광주 민중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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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도시-광주민중 항쟁과 제헌권력


조정환 | 갈무리 펴냄

조정환 | 갈무리 펴냄

'1980년 광주항쟁 30년의 역사는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 30년 역사와 정확히 역일치한다'는 것. 문제의식이 저술이다.

‘혁명’이란 말이 이토록 유행한 시대가 또 있었을까. 정보통신(IT)혁명, 금융혁명, 상품혁명, 디자인혁명, 스마트혁명, …. “운동이 혁명을 주저하며 샛길을 찾을 때, 자본은 매일매일 혁명에 여념이 없다. 신자유주의는 온갖 혁명의 종합세트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혁명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올해 ‘오월 어머니상’ 수상자로 발표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평가다. ‘지난 2세기동안 민중의 자발적 통치 능력을 보여 주는 두 개의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1871년의 파리코뮌과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다. 광주와 파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은 각자의 정부에 맞서 도시의 통제권을 장악했고, 법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중무장 세력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민중권력을 유지했다.’ 5월 운동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었지만 1997년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미온적인 사법 처리를 계기로 급격히 국가화돼 더 이상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기념제로 형해화되고 말았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님을 위한 행진곡), 항쟁은 박제화되고 신자유주의만 살아남았다. 저자의 좌표는 바로 이 지점이다. ‘1980년 광주항쟁 30년의 역사는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 30년 역사와 정확히 역일치한다’는 것. 문제의식이 저술이다. 저자는 1980년 광주가 신자유주의로 이행하는 자본주의에 맞선 전 지구적 투쟁의 일환이자 그 초기적 양상으로 출현했으며, 이후 국내외 투쟁들에 커다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오늘날에까지도 그것이 제기한 근본문제가 생생한 현재성을 갖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카치아피카스의 말이다. “광주는 군부 독재와 싸운 것이 아니다. 광주 민중은 이미 신자유주의와 대항해 싸우고 있었다.”

유신헌법의 발전주의적 독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상황에 대처하는 세 가지 입장이 있었다. 첫 번째는 호헌파로, 전두환 등 군부 독재 세력의 입장이었다. 두 번째는 개헌파로, 김대중·김영삼에 의해 대표됐다. 세 번째는 제헌파로,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드물게 개헌적 입장의 날개 밑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980년 5월 21일 120명의 시민군이 최초로 편성됐다. 대부분은 공장 노동자, 건설 노동자, 목공, 구두닦이, 웨이터, 일용품팔이 노동자들이었다.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은 골재 채취 차량 운전사였으며, 기동타격대장 윤석루는 자개공이었고, 경비대장 김화성은 식당종업원이었다. 22일부터 계엄군에 의해 강제 진압당하기까지 나타난 자치공동체에 의해 표현된 권력, 이들이 제헌권력이었다.

저자는 제헌권력을 ‘무엇보다도 기존의 질서 속에서, 또 그것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제도를 창안할 수 있는 다중의 역능’으로 정의한다. 시민이라기보단, 민중이라기보단 다중(네그리) 그 자체이다. 1987년 체제를 통해 개헌파는 승리한 듯 했다. 군부독재 체제는 문민 체제로 이행했다. 이후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각각 자본의 세계화(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노동의 유연화(노·사·정 합의와 정리해고), 생산의 지식정보화(지식정보사회와 토론 공화국)로 뚜렷이 표상될 수 있었다.

2007년의 선거는 1987년 체제와 그것의 한계에 대한 부정적 문제 제기의 방식이었다. 이명박의 선출은 문제의 해결에 대한 기대나 요청이라기보다 은폐돼 있는 문제를 뚜렷하게 가시화하는 수단이자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는 1987년 체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문제 제기를 민주화 없는, 그래서 실제로는 자유화조차도 철폐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요구로 번역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개헌파는 잔존하는 삼민주의를 파괴하고 신보수주의적 결산을 서두름으로써, 삼민주의의 자리에 자본독재를 새겨 넣음으로써 1987년 체제를 해체하고자 한다. 저자는 ‘공통도시’를 꿈꾼다. 독해해 보면 공통도시는 ‘제헌권력의 절대공동체’를 표상한다. 동의 여부를 떠나 광주민주화운동사 30년에 광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얻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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