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외국인 공동체, 지역민과 ‘소통의 장’

주민과 이주노동자가 함께하는 동아리모임으로 활성화 바람직

원곡동에서 열린 스리랑카 축제. 안산시와 시민사회단체는 외국인 공동체와 함께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소통을 위한 동아리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경없는마을 제공>

5월 20일 오후, 이주노동자가 많이 모인다는 안산 원곡동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돌았다. 경제 불황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일거리가 많이 줄어든데다, 불법체류자 단속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와 중국어 가게의 간판들이 없었다면 원곡동의 거리는 한적한 도시의 거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원곡동의 모습은 오후 늦은 시간과 주말이면 확연히 달라진다. 지역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이 뒤섞여 있는 풍경을 보면 원곡동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다.

2008년 12월 현재 원곡동에는 3만7625명의 주민이 산다. 한국인은 2만2290명으로 59.2%이고, 나머지는 1만5335명(40.8%)의 등록된 외국인들이다. 미등록 외국인을 합하면 적어도 3만 명 이상 될 것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원곡동만큼 거주자 가운데 외국인 비율이 높은 곳은 없다. 한 시민단체 자료에 따르면 안산시에는 55개국에서 온 외국인이 모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몽골, 태국,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외국인 비율이 높아지면서 안산시와 안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는 외국인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데 큰 힘을 쏟고 있다. 비록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이주노동자를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로 살면서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과 슬픔 등을 모두 치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외국인 공동체를 통해 이주노동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시민단체의 활동목표다.

안산시·시민단체, 공동체 활성화 지원
원곡동에 있는 외국인 공동체는 출신 국가별로 특성이 있다. 안산시가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세운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김창모 소장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곳도 있고, 소규모로 움직이는 곳도 있고, 지역주민과 소통하지 않는 폐쇄적인 공동체 등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서 “외국인주민센터를 설립하면서 외국인 공동체를 지원하려고 준비했는데, 참여율은 아직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기관을 이용하려면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등록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노동상담소로 출발해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해온 ‘안산이주민센터’에는 외국인 공동체가 비교적 활성화돼 있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없던 시절부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해온 덕분이다.

안산시 원곡동 국경없는 거리는 외국인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뒤섞여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경향신문>

안산이주민센터는 2006년 ‘(사)국경없는 마을’을 설립해 다문화 관련 학술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코시안의 집’을 설립해 이주노동자 자녀의 보육사업과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고, 다문화가족지원과 한국문화적응훈련을 위한 ‘안산이주민여성상담소 Blink’, 이외에 국가별 난민공동체를 지원하는 ‘이주난민쉼터’, 다문화교육과 다문화리더십교육사업을 펼치는 ‘국경없는 마을 훈련원’도 안산이주민센터에서 만든 조직이다.

특히 국경없는마을은 원곡동의 현실을 외부에 알리는 데 가장 많이 노력한 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국경없는마을 김승일 사무처장은 “이곳에서는 마을 문화나 교육, 예술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고, 안산이주민센터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상담과 문제 처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국경없는마을을 만든 이유는 당시 안산시나 문광부에서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서 학술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국경없는마을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다문화체험 강사 양성 프로그램이다. 이주노동자나 이주여성을 중심으로 다문화를 지역주민에게 알릴 수 있는 강사로 교육한 후에 각 학교를 찾아가 강의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함께 학생들에게도 다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경 없는 마을’ 다양한 활동 펼쳐
이런 다양한 조직을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조직,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안산이주민센터에서는 중국동포연합회와 더불어 베트남, 스리랑카, 아프리카, 필리핀 등의 이주노동자들이 공동체 모임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또 이주여성의 직능교육과 경제공동체 지원을 위해 만든 ‘다문화공방’과 다문화 지원사업과 지역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는 ‘다문화가족협회’가 외국인 공동체 모임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안산이주민센터는 매년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한 축제를 열어 공동체 모임으로 연결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안산시는 이런 특수성을 감안해 얼마 전 원곡동을 ‘다문화특구’로 지정했다. 이후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 다문화원 건립, 만남의 광장 활성화, 특화거리 조성, 세계 전통민속 축제 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특구로 지정되면 외국인 사증 발급 절차가 간소화되고, 체류자격별 체류 기간 상한 연장 등 출입국관리법상 특례가 적용된다. 하지만 다문화특구 지정 후 몇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다문화특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특구로 지정되면서 전세와 월세가 올라 이주노동자들이 방값이 싼 곳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도 생겼다.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의 화합과 이익을 위해 만든 정책이 오히려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을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안산이주민센터와 국경없는마을을 중심으로 지역주민과 이주노동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동아리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승일 사무처장은 “각 나라별 공동체 모임이 잘 안 되어서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외국인 공동체 모임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1년 동안 연례행사가 몇 차례 열리는데, 지역주민도 함께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사무처장은 외국인 공동체를 뛰어넘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으로 확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