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Place]비오는 날 생각나는 ‘훈훈한 맛’

- 국수집 ‘미스터훈남’

모시조개술찜

날씨나 계절,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생각나는 음식은 참 다양하다. 비 오는 날은 국수, 눈 내리면 단팥죽이나 호박죽, 또 서늘한 바람이 부는 어떤 날엔 돼지국밥이나 설렁탕, 햇살 가득한 날 점심이면 여지없이 비빔밥이 생각나고 꽃가루 날리는 봄날이면 왕돈까스쯤 먹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데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그 남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식욕으로 발(發)했을 뿐이다. 상황에 따라 별다른 식욕을 갖는 경우가 흔한 일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각각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 아닐까?

그 남자는 여럿이 무언가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는 닭갈비를 먹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럿이 둘러앉아 한 상에 펼쳐놓고 먹을 수 있고 푸짐한 양에 비해 맛과 가격대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겼는데 그래서 밥맛이 하나도 없음에도 무언가 먹어야 할 때는, 으레 전복죽을 먹기도 했다. 쉽게 넘어가는데다가 조금씩 먹다보면 죽처럼 마음도 풀리던 기억이 있다.

지난주에는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런 날이면 단연 뜨끈한 국물에 척척 말아낸 국수 한 그릇이 그립다. 요란스런 고명이 없어도, 그저 심심한 국물에 푸석하지 않은 면발이면 만족할 수 있다. 어차피 비 오는 날 생각나는 국수는 맛으로 먹기보다 분위기에 땡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홍대 주차장 골목 어귀에 새로 생긴 국수집 ‘미스터훈남’, 추적대는 기분에 가기 좋은 집이어서 소개한다. 추적대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가게 분위기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핑크색 외관에 붉은 창문과 녹색 식탁의 배치는 어두운 마음에 비 내리는 날일수록 바로 눈에 들어올 정도로 경쾌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우울한 기분이면 이 집을 찾는지도 모르겠다(마치 비 오는 날 노란 장화나 우비를 꺼내 입는 기분이랄까).

외관만 봐서는, 요즘 홍대 부근에 많이 생기는, 음식 맛은 형편없으면서 그저 펀(Fun)한 분위기만 파는, 그 따위 가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국수 한 그릇 시켜서 맛을 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국물을 띠포리(밴댕이)와 황태로 우려내어 담백한데다 고기육수에 비해 칼로리가 낮다. 게다가 국수에 들어가는 모든 육수는 당일 밤부터 새벽까지 5시간 이상 끓여 사용하고 그런 까닭에 하루에 80그릇만 국수를 말아낸다는 것도 ‘미스터훈남’ 국수 맛의 비밀이다. 국수만으로는 왠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남자 셋이 오순도순 모여 만든 주먹밥은 13가지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사이드 메뉴로 국물과 함께 먹으면 금세 배가 부른다(주먹밥이 정말 성인 남자의 주먹만하기 때문이다)

술손님을 위한 모시조개 찜은 정종으로 조리한 까닭에 약간의 술 향이 있지만 부드러운 조갯살에 육즙이 살아 있고 술안주에서 술 냄새 좀 나는 것이 뭐 그리 흉이랴 싶다. 모든 음식에 따라 나오는 무채가 유난히 사각사각 맛이 좋은데 어디서 받아 쓰지 않고, 주먹밥 만들던 그 훈남들이 채 썰고 양념하여 매일 매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들이 훈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 훈훈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국수가 있는 곳은 분명한 사실이니 추적스러운 기분이 드는 날 한 번 가보시라.

미스터 훈남

위치 마포구 서교동 411-15번지

그 남자의 Place

문의 02-337-8771

그 남자 탁현민 (tak0518@hanmail.net)
맛집과 가고 싶은 곳을 멋대로 소개한다. 정말 괜찮은 Place는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는 친절함도 갖추고 있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주)피당 Creative director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