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MBC 사영화, 박근혜가 웃는 까닭

정수장학회, 30% 지분… 부산일보 포함 언론재벌 가능성

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 MBC ‘사영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 시나리오는 모두 3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1단계는 한나라당이 2008년 12월 3일 발의한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7개 법의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지금까지 민주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금지해왔던 지상파방송과 보도·종합편성 PP에 대한 신문사와 대기업의 소유를 각각 20%와 49%까지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현대차·SK·LG와 같은 재벌기업과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같은 시장 지배적 보수신문이 함께 나선다면, 통째로 지상파방송을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단계는 내년 초에 내놓을 예정인 ‘공영방송법’이다. 이 법안은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하기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실제로는 국회의 예산 승인권을 통해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MBC를 직접 겨냥해서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삼고 있지 않기에’ 공영방송의 범주에서 제외하려 하고 있다. 현재 가구당 2500원씩 내고 있는 공영방송 수신료를 5000~6000원 수준으로 인상하여 KBS와 EBS의 수입 중 수신료 비중을 80%선으로 올려주되, 국민의 부담을 고려해서 MBC까지 수신료를 주긴 어렵다. 따라서 MBC는 지금처럼 수신료가 아니라 광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영방송법은 광고 수입과 같은 사적 재원에 의존하는 방송사는 소유 구조나 프로그램의 성격에 관계없이 공영방송이 아닌 민영상업방송으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 주자로선 부담감 커
1단계를 통해 재벌과 신문사의 지상파방송 소유가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2단계를 통해서 MBC는 공영방송이라는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 이제 마지막 3단계는 MBC의 소유 구조를 변경하여 ‘재벌방송’ 또는 ‘조·중·동 방송’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1단계 및 2단계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3단계의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 여당이 보인 행보에 비추어볼 때,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현재 MBC의 지분은 공익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가 70%를, 장학재단인 정수장학회가 30%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사영화를 위해서는 MBC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 방문진의 지분을 회수하여 대기업에 넘겨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공법인 방송문화진흥회법을 폐기하거나 개정함으로써 가능하다.

국회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방문진법을 폐기할 수 있는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방문진법을 폐기하면 그 자산은 국고로 환수된다. 다시 말해서 MBC 지분의 70%가 일단 국고로 넘어간다. 다음으로 자산 재평가를 거쳐서 매각에 나선다. 1988년 방문진법 제정 당시, MBC의 자본금은 10억 원으로 방문진과 정수장학회가 각각 7억과 3억 원의 지분을 소유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MBC의 자산 가치는 어림잡아도 10조 원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의 자산 재평가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만약 재벌이 MBC 지분을 20%까지 소유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과정을 거쳐 정부는 7조 원 안팎의 현금을 확보하고, 지분을 사들인 재벌은 MBC를 통한 여론 지배력을 얻는다.

그런데 대기업과 신문사가 MBC 지분을 최대 20%까지만 소유할 수 있다면, 결국 MBC의 최대 주주는 현재 30%의 지분을 소유한 정수장학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2005년, 공당의 대표가 언론사의 지배주주인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여론의 문제 제기에 떠밀려 사퇴했지만, 3공화국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현재의 최필립 이사장은 박 전 대표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있다. 그렇다면 MBC 사영화의 결과는 박 전 대표의 MBC 장악일까? 부산일보를 포함하여 새로운 언론 재벌로 군림하는 것일까?

재벌이나 조·중·동이 인수할 수도
적어도 현재의 정치역학으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박 전 대표가 ‘언론 장악’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무리하여 자초할 까닭이 없다. 게다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박정희 정권 시절, 부산일보와 MBC 소유권의 강제 헌납을 통해 설립되었다는 부담도 있다.

MBC를 직접적으로 박 전 대표의 영향력하에 두는 것은 박 전 대표뿐 아니라 현 정부에도 매우 부담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 전 대표는 한 배를 탄 동지기 이전에 정치적 라이벌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미디어정책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신재민 문화부 제2차관은 지난해 4월, “현재 MBC의 소유 구조는 5공 잔재이며 청산이 필요하다”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박 전 대표를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전두환 정권의 부당한 언론통폐합을 끌어들여 MBC 사영화의 정당성을 억지로 확보하는 동시에 정수장학회의 떳떳하지 못한 역사를 상기시킨 셈이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려는 MBC 사영화 3단계의 마지막은 정수장학회 지분의 국가 헌납이나 매각 종용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른다. 국가 헌납이 여의치 않으면, 박 전 대표가 필요로 하는 정치자금을 정수장학회의 지분 몫으로 계산하여 재벌에 매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쉽지 않다면, 아예 이번 방송법 개정안이 규정하듯이 지상파방송의 1인 지분 제한을 현행 30%에서 49%까지 확대하여 새로운 최대주주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2008년 7월 말,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른바 ‘MBC 위상정립 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방문진의 MBC 지분을 국민주와 종업원지주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수장학회의 최대주주로 군림은 막되, 실상은 국민주의 허울을 쓴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이 MBC의 명목상 최대주주가 된 채로 정치 권력과 재벌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추진하든 간에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은 MBC의 ‘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다.

그럼에도 굳이 ‘민영화’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백성 민(民)’이라는 글자가 지닌 긍정적 어감과 더불어 뭔가 비효율적인 것을 효율적으로 바꾼다는 대중적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수장학회든, 국민주의 허울을 쓴 정치권력의 지배든, 아니면 재벌의 노골적인 방송 장악이든 MBC 사영화 과정에 백성이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남표 | MBC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