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청와대는 위기관리 블랙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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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북 매뉴얼 따라 훈련까지… 청와대서 보고지연 허점 노출

이명박 대통령이 7월 18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첫 번째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왜곡 기도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7월 18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첫 번째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왜곡 기도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최근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느니, 매뉴얼도 없느니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06년 12월 개성공단, 금강산 등 북한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으며, 통일부 주관으로 도상 훈련 및 가상 훈련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와 현대아산은 바로 이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따른 매뉴얼대로 청와대에 신속히 보고했으나 청와대의 시스템 미비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데 무려 2시간이나 걸리는 허점을 노출했다.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위기관리의 블랙홀’이 된 것이다.

이 대통령 “두 시간 걸린 건 중대 문제”
이에 따라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스스로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이번 사건이 청와대 관련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인 내게 보고하는 데 무려 2시간 이상이 걸린 것은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며 “위기대응 시스템의 개선 방안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국회의원모임인 ‘위기관리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공성진 의원(한나라당)도 “금강산 피살 사건 보고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된 것은 국가위기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라면서 “정부의 진상조사가 미진할 경우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하게 책임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포커스]청와대는 위기관리 블랙홀인가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각국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완비해놓고 있다.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한 위기관리 시스템은 국가의 존망 및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해 조직(시스템)과 인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정부에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일괄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조직이 갖춰져 있지 않다. 대북·외교·안보와 관련한 위기관리 시스템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가 담당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를 취합해 정확히 정책·정무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기능을 가진 조직(부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실 산하에 있는 위기정보상황팀이 국내외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에 대해 관리·분석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산하에 있던 위기관리센터가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NSC 사무처가 없어졌고 위기관리센터는 위기정보상황팀으로 대폭 축소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식직제로 돼 있는 조직이 아니라 임시조직이다. 단지 24시간 상황만 점검하는 단순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변모한 것.

또 위기정보상황팀장의 직급이 1급에서 2급으로 격하됐으며, 근무 인원도 20여 명에서 15명으로 줄었다. 위기정보상황팀장은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차두현 선임행정관이 맡고 있다. 직원 15명 중 9명은 국방부·경찰청·소방방재청에서 파견나온 직원들로 순수하게 상황만 관리한다.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5명만 상황분석 담당 업무를 한다. 하지만 5명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직원들로 통일부와 외교부의 직원은 한 명도 없다. 이러한 중대한 위기 발생 시 10~20분 안에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현재의 위기정보상황팀으로는 역부족인 셈이다.

금강산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박왕자씨 시신이 7월 11일 정확한 사인을 분석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지고 있다. <김정근 기자>

금강산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박왕자씨 시신이 7월 11일 정확한 사인을 분석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지고 있다. <김정근 기자>

또 위기정보상황팀은 대통령실 산하의 임시조직이기 때문에 팀장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첫 보고를 김성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차두현 팀장은 금강산 피격 사망 사건을 접하고 대통령실장과 외교안보수석에게 1차로 구두보고하고, 다시 서면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위기정보상황팀장이 정보의 취합과 보고, 내부 전파 등을 매뉴얼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역할과 권한에 관한 훈령이나 규정조차 없기 때문이다. 군사전문 월간지 디앤디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상황실은 24시간 가동되는데 행정관 직급으로 누구한테 보고해야 할지, 소신 있게 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편집장은 “인수위원회 당시 위기정보상황팀조차 두려고 하지 않았는데 당시 숭례문 화재가 발생해 그나마 임시조직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정부 들어 NSC사무처 없어져
참여정부의 경우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기관리센터장(NSC 사무처장 겸임)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대통령에게 동시에 보고하는 시스템이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에는 상황 발생 시 우선 사실만 보고하고 분석은 그 다음에 하는 ‘선보고 후분석’ 개념을 주로 이용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의 문제점과 함께 인물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실이 현대아산에서 통일부로 보고된 것은 지난 7월 11일 오전 11시 30분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오후 1시 30분이었다. 이 날은 우연하게도 이 대통령이 오후 2시 20분으로 잡혀 있는 국회연설에서 중대한 대북 제안을 하도록 예정돼 있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김성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실을 위기정보상황팀에 보고받은 후 2시간 가까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늑장 보고의 원인은, 상황을 더 세밀히 분석하기 위해서기도 했겠지만, 대통령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의 정책적·정무적 판단의 미숙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첫 보고 내용만으로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미흡해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면서 “대통령에게 직보하기 위해서 좀 더 면밀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대통령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이 대북·안보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정 실장은 외교안보 분야에는 문외한이다. 그는 경북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 잠시 공직에 몸담았으나 그후 대학 강의실과 연구실에만 있던 학자 출신이다. 김성환 수석도 대북·안보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 정통 외무 관료 출신인 김 수석은 동유럽과 대미관계 업무를 주로 맡았고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북·안보 분야에서 비전문가들인 정 실장과 김 수석이 상황 분석에 시간이 걸려 이 대통령에게 늑장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회 개원 연설을 앞두고 여의도로 떠나기 직전에 보고를 받고 충분한 정무적 판단 없이 중대한 대북 제안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결국 조직이나 기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면서 “기구적 측면에서도 안보나 북한을 다루는 전문가가 참여정부 때보다 줄어들었고 외교안보수석도 외교부 출신이어서 북한 문제에는 생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위기정보상황팀은 임시조직

홍양호 통일부 차관(왼쪽)이 7월 13일 서울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과 관련한 정부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홍양호 통일부 차관(왼쪽)이 7월 13일 서울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과 관련한 정부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여기에다 외교안보수석이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는 체제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는 ‘1실장 7수석 체제’로 개편됨에 따라 기존의 장관급이던 통일외교안보실장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격하되어 대통령실장 밑으로 들어갔다. 이에 따라 김성환 수석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정 실장이 2시간이 지난 뒤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참여정부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에 외교안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참여정부의 경우 초기에는 NSC 사무처장이, 후기에는 통일외교안보실장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NSC 사무처장 또는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통일부·외교부·국정원·국방부 등 관련 부처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NSC 사무처)에 상황을 보고하면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보고서를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민의 정부에 있던 NSC 사무처를 확대 개편했다. 당시 사무처는 정책조정실, 전략기획실, 정보관리실, 위기관리센터가 있었으며, 2006년 1월 통일외교안보정책실로 개편되면서 산하에 정책조정실, 전략기획실, 정보관리실이 들어왔고 NSC 사무처는 위기관리센터만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NSC 사무처가 폐지됐다. 특히 참여정부 때 위기관리센터는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위기관리센터는 ▲위기 유형별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33개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 278개(33개 유형)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 2339개(17개 유형)를 만들었으며, 경제 상황 점검 매뉴얼과 공공기관 위기관리 지침도 수립했다. 이 같은 매뉴얼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주관 부처와 청와대 비서관실에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단국이자 대형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우리나라에서 청와대 위기정보상황팀이 임시조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위기관리 시스템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위기정보상황팀을 정식 직제로 인정하고 참여정부에서 했던 위기관리 시스템을 다시 도입하는 문제도 숙고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현대 사회는 대형 사건·사고가 국가 위기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아 영역 간 충돌이나 마찰 없이 가동되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국정원·국방부·통일부 등 정부뿐 아니라 민간 기업도 아우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부·국정원 등 관련 부처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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