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난시청 해법 아직 ‘화면조정중’

케이블방송 일방적 요금 인상으로 난시청 문제 ‘부상’… 시청자 선택권 회복할 ‘묘수’ 없나

케이블방송의 요금인상은 난시청 문제를 부각시켰다. 사진은 인위적 난시청 문제를 겪고 있는 서울 관악구.

서울 관악구에 사는 나경채씨(32·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사무국장)는 6월 19일 2006 독일월드컵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지난 2월 케이블방송을 끊은 뒤 제대로 된 TV화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근처 전파상에서 안테나를 구입해 설치해봤지만, TV화면은 깨끗하지 않았다. 나씨는 KBS에 전화를 걸어 ‘수신료를 낼 수 없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KBS 직원이 찾아와 전파 수신을 점검했다. 화면상에서 자막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직원은 화면이 난시청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화면을 보고 있자니 머리만 아팠던 나씨는 이후 TV를 켜지 않았다. 이후 비슷한 문제가 주변에서도 발생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관악구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 케이블방송과 난시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방송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 난데없이 아날로그 방송 난시청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케이블방송업계가 디지털방송 전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펼쳐왔던 ‘박리다매’ 정책을 수정하면서부터다. 과거 중계유선 사업자와 경쟁을 벌이던 케이블방송업계는 중계유선사업자보다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채널을 볼 수 있게 해 가입자를 확보했다. 그래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은 4000원 이하의 가격에 70여 개에 달하는 채널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TV 안 나와도 수신료는 내라고?

그러나 요금을 ‘정상화’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두 배에 달하는 요금 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일 이는 없었다. 게다가 일부 케이블방송이 스포츠채널 등 인기가 높은 채널이나 바둑TV, 낚시채널 등 마니아가 많은 채널을 고급형에 끼워 넣는 ‘편법’을 사용해, 요금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 방송을 보려면 예전 요금의 세 배 가량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다른 케이블방송업체가 있다면 다른 상품을 선택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 케이블방송업체는 독점 체제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케이블방송은 상품이다. 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단 안테나로 지상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가 필요하다. 안테나로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다면 시청자에게 케이블방송은 필수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현실적으로 많은 지역이 안테나로 방송을 볼 수 없는 이른바 ‘난시청 지역’이다. 자연환경적인 이유로 지상파 방송국의 전파가 도달하지 않는 자연적 난시청 지역보다 건물에 전파가 가로막혀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인위적 난시청 지역이 많은 실정이다. 인위적 난시청은 도심지에 많은데, 이것이 안테나로 직접 수신하는 대신 케이블방송을 선택하는 이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KBS가 최근 일반국민 22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 수신이 좋지 않아 케이블에 가입한 이는 전체의 36.5%에 달했다.

6월 16일 출범한 ‘케이블방송 독점규제와 난시청 해소를 위한 전국대책위원회’ 는 케이블방송의 일방적인 요금인상, 채널변경과 난시청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6월 16일 관악구주민대책위 등이 중심이 되어 출범한 ‘케이블방송 독점규제와 난시청해소를 위한 전국대책위원회’는 케이블방송의 일방적인 요금인상과 채널변경 뿐 아니라 난시청까지 문제 삼고 있다. 현실적인 난시청 때문에 케이블방송을 보지 않을 권리까지 침해되기 때문이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케이블방송업체의 독점으로 인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지만 무료 시청권이 확보되지 못한 현실에 심각성을 느낀다”며 “방송위원회와 공영방송은 케이블방송사의 일방적인 요금인상과 채널변경, 무료 시청권의 확보를 위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가 주장하는 케이블방송의 일방적인 요금인상과 채널변경 문제는 해결될 전망이다. 주민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시청자위원회를 통해 요금인상과 채널변경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 이를 방송사의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청자위원회에는 시청자단체나 지역 주민이 참가할 예정이다. 물론 ‘반영’에 강제적인 의무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케이블TV방송협회 측은 ‘주민의 뜻을 상당부분 반영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 케이블TV방송협회 김영철 사업지원국장은 “협회 차원에서 규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회원사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재허가와 관련해 방송위원회에 부정적인 의견을 넣을 계획”이라며 “주민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위원회는 일단 케이블방송업계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지상파만 원하는 주민이 절반”

전국대책위원회 김수정 사무국장은 실질적 난시청을 겪고 있는 지역 주민 중 원하는 이들에게는 지상파방송 중심의 ‘초저가 상품’ 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불거진 난시청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근본적인 선택권을 갖지 못한 상황에 시청자는 언제나 케이블방송에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택권’을 위해 행동에 나선 곳도 있다. 수원 지역의 한 아파트는 지난 1월 케이블 방송을 끊었다. 물론 이곳도 안테나만으로는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기 힘든 지역이다. 요금인상 등 케이블 방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정삼 아파트입주자대표 등은 아파트 12개 동을 돌며 케이블방송 해지에 대한 주민동의를 받았다. 90%가 넘는 동의를 받은 이 대표와 아파트관리사무소는 관리비 2000여 만 원을 들여 위성수신장비를 갖추고 공청시설을 정비했다. 덕택에 13개 채널을 깨끗하게 시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많은 채널에 익숙했던 일부 주민이 더 많은 채널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지난 5월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서울 본사를 찾았다. 스카이라이프에 단체로 가입할 테니 나은 조건에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스카이라이프 측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현재 500여 세대가 스카이라이프에 가입, 케이블방송이 요구하는 금액보다 낮은 금액에 많은 채널을 즐기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다른 아파트도 케이블방송을 끊고 공청시설로 공중파만을 내보내거나, 위성방송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선택권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전에는 지상파 방송만 보는 사람이라도 케이블방송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절반이 넘는 세대가 스카이라이프라는 다채널을 선택하지 않았다. 제대로 지상파 방송만 볼 수 있다면 다채널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주민의 절반 이상인 셈이다.

주민 안미나씨(47·여)도 이런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다채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채널이 사라진 뒤, 며칠간은 불편했다. 어떤 이는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TV에 빠졌던 시간에 컴퓨터를 하는 등 다른 쪽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안씨 등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공청시설을 관리하는 관리사무소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가에 사는 이들은 일반 안테나로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다면 난감해진다. 30만 원 가량을 들여 위성안테나를 구입, 설치에 성공한다면 어느 정도 시청은 가능해지지만, 위성이 있는 남남서 방향에 큰 건물이 있는 경우에는 시청이 어렵다.

자연적 난시청이야 매달 2500원의 수신료를 전기세에 붙여 받는 KBS에 책임이 있지만, 건물 등에 전파를 방해받는 인위적 난시청의 경우 법적인 책임은 해당 건물주에게 있다. 그러나 수년 전 싼 가격에 케이블 방송을 시청할 수 있던 시절에는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 권리를 주장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KBS도 아날로그 방송 수신율을 높이기 위해 중계기를 설치할 수는 없다. 디지털 방송 시작을 불과 4년 앞둔 현재 상황에서 아날로그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KBS 관계자는 “주택가가 문제인데, 지금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디지털에 사용할 주파수도 부족한 상황에 아날로그 중계기에 정부가 주파수를 내줄 리도 없을 뿐더러 설사 내준다고 하더라도 KBS 내부에서 승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위적 난시청 지역에 사는 이들은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이런 현실은 대책위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전국대책위 김정대 정책위원장(민주노동당 전문위원)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지상파방송을 담고 있는 초저가형 상품을 만들어 이를 실질적인 난시청을 겪고 있는 지역에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 안 되는 ‘의무형’ 일부러 회피

수원지역의 한 아파트는 케이블방송을 해지하고 공청시설을 정비, 지상파방송을 보고 있다. 이정삼 아파트입주자대표는 주민에게 ‘선택권’ 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사실 케이블방송은 난시청해소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했던 중계유선을 흡수·통합, 몸집을 불려왔기 때문이다. 까닭에 케이블방송은 지상파방송과 공공방송 등 20개 채널을 저렴한 가격에 ‘의무형 상품’으로 운영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업계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알리지 않고 가입을 피해왔다. 의무형 상품이 존재하는데도 더 비싼 상품이 최저라는 식으로 알리는 식이다. 실제로 방송위원회가 전국 111개 케이블방송과 각 방송사별 가입자 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입자의 75% 가량이 의무형 상품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안내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는 케이블방송업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케이블TV방송협회 김영철 국장은 “유료사업자라 비싼 상품을 팔려고 했던 점은 있다”며 “의무형 상품의 실질적 운영을 전국적으로 권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방송위의 입장과도 비슷하다. 방송위는 의무형 상품 가입자를 케이블방송사가 매년 납부하는 방송발전기금 징수기준에서 제외해 실질적으로 의무형 상품이 운영될 수 있도록 권장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채널을 위해 케이블 방송을 선택한 이들과 달리,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 의무형 상품을 선택한 이들은 수신료와 케이블방송 요금이라는 이중부담을 안게 된다. 의무형 상품은 4000원 이하로 규정돼 있다. 이에 전국대책위 측은 지상파방송만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케이블방송요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대책위 김정대 정책위원장은 “대책위와 함께 난시청에 책임이 있는 케이블TV방송협회, 방송위원회, KBS 등이 모여 난시청 해소를 위한 초저가형 상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며 “이중부담 문제를 없애기 위해 실질적 난시청 지역 주민에 대해서는 초저가 상품을 무료로 공급할 수 있도록 논의를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방송위의 김정수 뉴미디어부장은 “자연적으로나 인위적으로나 화면이 안 보이는 것은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실질적인 난시청 지역에 사는 사람도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단 방송발전기금 등 예산이 확보되는 내후년부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사업을 실시하도록 노력하되, 나머지 부분에 대한 확대 부분은 케이블방송 등과 계속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동안은 수신료를 이중 부담하는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