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의오프스테이지]가수들의 고집

따지고 보면 일약 스타가 된 가수는 많지 않다. ‘혜성처럼 등장해 가요계를 강타’했다는 이들도 다들 나름대로 적지 않은 트레이닝과 마음고생을 했기 마련이다. 그런데 서러운 무명시절을 길게 가지고 있는 가수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라이브를 고집하고, 밴드를 고집하고, 싱어송라이터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고집을 끝까지 지켜 성공한 이도 있고, 오히려 그중 몇 가지를 포기하여 스타가 된 이들도 있지만, 여하튼 그런 고집스러운 시절은 그들의 성공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록음악에 참으로 소중한 ‘자우림’. 자우림의 드러머 구태훈의 이야기는 다소 재미있으면서도 짠하다. 모 방송사 주최 가요제에 게스트로 출연하기 위해 대기하던 중 비가 내리자 스태프가 무대 위에 있던 드럼을 치우더란다. 대부분이 MR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자우림 순서에 다시 설치하려나 싶어 아무 말 않고 보고만 있었는데 막상 자우림 순서가 되어도 드럼은 설치하지 않더란다.

결국 스틱을 손에 든 구태훈이 “드럼 설치 안 해줘요” 하자 “비가 오는데 어떻게 드럼을 무대 위에 놔요? 안돼요” “그럼 연주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못해요”하고 대기실로 들어가 버리자, 담당PD가 오고 악기 스태프가 분주히 오가더니 준비되었으니 나오라고 하더란다. 그런데 무대 위에 올라가니 드럼 자리에 봉고가 두 개 놓여 있는 것 아닌가?! 비는 내리고 결국 구태훈은 태어나서 처음 자우림 음악에 봉고를 치며 라이브를 했다고 한다. 드러머가 봉고를 치며 연주하는 것은 코미디지만, 구태훈의 라이브와 밴드에 대한 고집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공연이든 방송이든 현장상황에 따라 맞추어 가는 것은 (기획자와 연출가의 입장에선)가수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특히 대중음악 ‘질’의 문제가 대중음악 비판의 상당부분임을 생각하면 고집스러운 아티스트와 철저한 기획자, 그리고 환상적인 연출가의 몫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탁현민의오프스테이지

듣는 음악은 제대로 들을 수 있게, 보는 음악은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가요계를 강타하는 혜성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공연기획자> tak05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