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토토]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한국인’

슈퍼볼 MVP 하인스 워드 ‘신드롬’… 그를 냉대한 반쪽조국에 ‘자부심’을 안기다

지상 최대의 스포츠 제전으로 불리는 슈퍼볼이 열린 2월 6일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필드.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는 29년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고 있었다. 이날 워드는 기자단투표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경기가 끝난 뒤 워드의 눈에 고인 눈물은 단지 슈퍼볼 우승과 MVP 수상으로 인한 감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미군 병사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환영받을 수 없었던 혼혈아. 행복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던 그는 생애 최고의 순간에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고난의 인생길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날 경기를 위성중계를 통해 지켜보던 한국인들의 감상은 워드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실 풋볼선수로서 워드는 이번 슈퍼볼 경기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깜짝스타가 아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NFL의 정상급 선수였고 그의 성장배경 역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던 터였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에서 ‘워드열기’가 뜬금없이 달아오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한국인 어머니의 헌신적인 모정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 선수의 어머니 김영희씨가 2월 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근교의 자택에서 워드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워드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그가 반쪽이나마 한국인의 피를 가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또 풋볼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기까지의 그가 극복해야 했던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그를 키워낸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의 헌신에 대한 진한 감동도 더해졌다. 그러나 자신의 성장과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반쪽 조국 한국을 잊지 않고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워드의 태도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한국인들도 많았다.

워드는 1976년 3월 8일 주한미군으로 서울에 복무하던 아버지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던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어머니는 ‘흑인 병사’의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상태였고 사회 분위기는 흑인의 피가 섞인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1년 뒤 아버지를 따라 워드와 어머니는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2개월 뒤 아버지는 독일로 발령받아 모자의 곁을 떠났고 귀국 후에는 다른 여자와 재혼했다. 김씨는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법정공방까지 벌였지만 영어가 서툴러 아들을 양육하는 데 불리하다는 이유로 워드마저 잃었다. 그러나 워드는 일곱 살 때 스스로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을 키우기 위해 시간당 4달러 남짓한 최저임금을 받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서너 곳씩 뛰어다녔다. 지난해 워드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는 3가지 일을 했다. 애틀랜타 공항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호텔에서 청소를 했으며 식료품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새벽 2시까지 일하고 돌아와 이른 아침 나를 깨워 아침식사를 차려 주시고는 곧바로 일하러 나갔다. 한 곳에서 일이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식탁에 점심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신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절대 갚을 수 없다.”

워드가 1998년 프로 입단 계약금을 받은 뒤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집과 벤츠승용차를 선물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의 표시였다. 워드는 한때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겼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차로 자신을 학교에 데려다 줄 때는 뒷좌석에 엎드려 몸을 숨겼고 어머니가 학교로 마중나왔을 때는 숨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정성과 열정에 감동한 그는 언젠가부터 한국인의 피가 자신의 몸 속에 흐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

워드의 팔뚝에는 한글로 또렷이 새긴 자신의 이름과 미키마우스의 문신이 있다. 한국인임을 잊지 않는 동시에 미키마우스처럼 항상 즐거운 생각만 하며 살겠다는 각오를 나타낸 것이다. 출신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적인 사고. 이 두 가지는 오늘날의 워드를 있게 한 원천적 힘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결손가정에서 홀로 자라는 동양계·흑인 혼혈 소년이 비행의 길로 빠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가르침 외에 운동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워드는 고교시절부터 각종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래를 예고했다. 그는 조지아주 포리스트파크 고교 풋볼팀에서 러닝백·쿼터백·와이드리시버 등 주요 공격 포지션을 모두 소화해냈고 ‘USA투데이’가 선정한 전미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워드는 미국 최고의 대학 풋볼 명문 네브라스카 대학의 스카웃 제의를 뿌리치고 어머니가 있는 고향의 조지아대를 선택했다. 대학에서도 그는 리시버·쿼터백·테일백 등 여러 포지션을 맡았다. 이 때문에 그는 패싱·리시빙·러싱으로 각각 1000야드 이상을 전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의 대학시절 총 전진 거리는 3870야드. 조지아 대학 출신 선수로는 NFL의 전설적 존재 허셜 워커 다음 가는 기록이다.

스포츠 광고 최정상 모델 반열에

프로데뷔를 앞두고 워드는 자신의 무릎에 십자인대가 끊어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그는 프로지명에서 3라운드로 밀렸다. 그러나 입단해 2년째인 1999년부터 리시버로 발군의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다.

리시버로서 워드의 최대 장점은 빠른 스피드와 끈끈한 손, 그리고 상대 수비의 취약지점을 향해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동물적 감각이다. 그의 주력은 수비진에서 가장 빠른 선수들이 포진한 코너백과 세이프티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다. 또 페이크 동작으로 상대 코너백을 따돌리는 동작이 워낙 일품이어서 일 대 일 수비로는 워드를 좀처럼 막을 수 없다.

워드는 2001년부터 4년 연속 1000야드 이상 패스 리시빙을 기록하고 NFL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가 지금까지 기록한 총 574회 패스 리시빙은 팀 역사상 최다기록이다. 피츠버그는 제롬 베티스·윌리 파커·듀스 스탤리 등 뛰어난 러닝백들을 보유하고 있어 워드와 같은 리시버를 활용한 패스공격보다 러싱공격에 주력하는 팀이다. 만약 워드가 뛰어난 패스능력을 가진 팀에서 최고의 쿼터백과 호흡을 맞춘다면 그의 기록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겸손·절제·성실의 미덕이 몸에 밴 탓이다. 거구의 선수들이 온몸으로 덮쳐오는 풋볼경기에서 큰 부상 없이 8년간 대부분의 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던 비결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연습 덕분이었다.

워드는 지금 스포츠 광고 모델로 정상급 반열에 올라 있다. 이번 슈퍼볼이 끝난 직후 그는 올랜도 디즈니월드로 날아가 광고를 찍었다. 디즈니의 역대 광고모델이 마이클 조던·매직 존슨·조 몬태나·배리 본즈 등 전설적 선수들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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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는 오는 4월 어머니와 아내 등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 1살 때 남의 눈을 피해 등졌던 고국에 금의환향할 날을 그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혼혈에 대한 편견과 눈이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그의 고국은 아직 그를 진정으로 환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보인다.

<국제부/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