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토토]토종들이여 골밑은 포기했나

리바운드 1~14위까지 용병이 싹쓸이… 한국 농구 국제경쟁력 갈수록 약화

한국 프로농구는 역시 ‘용병들의 놀음’이다. 경기를 할수록 쌓이는 기록에도 외국인 선수들의 의존도가 잘 나타나고 있다. 12월 8일 현재 프로농구 부문별 기록을 보면 외국인 용병들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개인득점 랭킹 10위 안에서 토종선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1위부터 11위까지를 외국 선수들이 차지한 것이다. 서장훈만이 12위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할 뿐, 20위 안에 국내선수 단 6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리바운드 부문은 더욱 참담하다. 1위에서 14위까지를 용병들이 점령하는 동안 우리 선수들은 구경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김주성·서장훈이 15위·16위로 겨우 이름값을 하고 , 그 뒤를 이어 포인트 가드인 김승현과 이상민이 분전하는 점이 이채롭다. 김승현과 이상민의 리바운드 성적을 감안한다면 국내 키 큰 선수들은 뭐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국내 선수들은 폼 나는 3점슛만 던질 줄 알지, 골밑은 “용병들이 알아서 해주겠지”하는 듯하다.

또한 국내 선수들의 전유물이던 어시스트 순위에서도 모비스의 크리스 윌리엄스가 4위, 동부의 마크 데이비스가 7위를 차지했다. 가로채기 부문에서도 윌리엄스가 1위에 올랐고, 10걸 안에 외국인 선수가 3명이나 된다.

국내 선수들 ‘외곽’에만 치중

프로농구가 프로배구를 제치고 겨울철 실내스포츠의 ‘맹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 용병제도를 들 수 있다.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경기 수준을 높이고 관중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도입한 용병제도는 프로농구 흥행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각 팀의 전력차를 좁히고 국내 선수들보다는 한수 위 실력과 타고난 탄력으로 국내 코트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내 선수들의 몸싸움 적응력을 키워, 국제대회에서 신장의 열세를 극복해보겠다는 의도는 빗나간 것 같다.

높이에서 용병에게 밀린 국내파들이 ‘골밑’을 외면한 채 ‘외곽’에만 치중해 국제대회에서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게 된 것이다. 포스트가 약하다 보니 외곽슛이 상대방에게 봉쇄될 경우에는 게임을 풀어갈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 도입한 외국인 용병들이 한국 농구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프로구단은 대개 2명의 용병을 센터와 포워드로 선발한다. 이들은 힘과 높이에서 한국 선수들을 압도한다. 신장면에서 국내 센터들과 큰 차이가 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흑인 특유의 탄력성은 한국 선수들이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국내 선수들은 골밑을 용병들에게 맡긴 채 외곽플레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김주성과 서장훈 정도만이 이들과 골밑에서 힘겨운 대결을 펼치지만 기록면에서 현저히 떨어진다.

대학시절 나름대로 골밑에서 경쟁력을 보이던 삼성 이규섭·KTF 송영진·모비스 김동우 등도 프로에 와서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이 용병들에게 막혀 제자리를 못 찾고 외곽으로 돌다보니 백업멤버에 만족하는 신세다. 프로 입단시절엔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코트에서 뛰는 시간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제 기량을 피워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농구의 국제대회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 9월에 카타르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그치며, 사상 최악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중국에 44점차의 참패를 당했으며 카타르에도 패해 세계선수권 출전마저 좌절됐다. 코칭스태프는 중국은 물론 중동국가들에도 밀리는 리바운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한국대표팀의 부진은 짧은 훈련기간과 주전들의 노쇠화가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골밑플레이의 약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중국과 쌍벽을 이루던 아시아권에서마저 2류국가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아마농구 센터 기피현상 심각

아마에서 센터로 뛰던 선수들도 프로에 와서는 자신의 포지션을 버리고 외곽으로 돌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마농구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센터 기피 현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한다. 한국 농구가 국제대회에 나갈 때조차 센터자리를 외국인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젠 KBL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용병을 2명에서 1명으로 축소하거나, 2명 중 1명이라도 신장제한을 190㎝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또 현행 2쿼터로만 되어 있는 외국인 출장제한 시간을 더 늘려서 토종선수들의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제대회에 나가서도 골밑과 외곽이 균형을 이루는 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구는 청소년들이 가장 즐기는 운동이고 우리나라 인기스포츠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무리 ‘귀족종목’ 대접을 받아도 국제대회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할 길이 없다. 관중석이 텅 빈 경기장에서 늘 팬을 그리워하는 하키·핸드볼 등 비인기종목의 국제성적과 비교하면 프로농구 선수들도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인기에 도취해 ‘태극마크’의 의미를 간과한다면 팬들의 비난에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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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기자 jiji@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