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신종 바이러스와 전투를 치르고 있다. 전쟁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다고 하니 ‘전시상태’라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엄중한 상황은 위헌적인 조치와 요구들이 검증 없이 시행되는,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와 지자체가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할 때 내밀한 사생활 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시간 동일 장소에 있던 접촉자들의 감염 여부를 확인해 방역조치를 하려는 목적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받아야 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달성할 수 있다.
신천지의 교주가 온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는 희대의 상황도 있었다. 방역 당국의 지침에 협조하지 않고 예배를 본 신도들이 대거 감염자와 감염원이 된 신천지에 대한 분노는 컸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에 힘입어 지자체장들은 즉각적인 조치들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신천지 조직의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했고, 구상권 청구와 함께 강도 높은 세무조사로 압박했다. 이 조치는 ‘행정기관은 행정활동을 행함에 있어서 그것과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반대급부와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행정법상 부당결부금지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신천지는 파렴치하고 반사회적인 종교단체라며 일련의 조치가 방역 활동 방해에 대한 응보적인 것임을 감추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신천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지시했다. 위법행위가 없는 상태에서 압수수색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신도명단을 확보한 후 방역 당국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 수사를 지시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다. 그러나 장관은 “전례가 없는 감염병 사태인 만큼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며, 국민의 86% 이상이 압수수색을 요구한다”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비상한 상황에서라면 국가는 초법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격리자의 이탈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전자감시장치 부착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엄중하게 규제한다. 국가는 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같은 중차대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오직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이 헌법 원칙은 특정한 시기에 다수의 복리를 위한 요구가 거세질 때 사람들의 기본적 지위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지, 그저 명목상 국민의 지위를 확인하는 조항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는지, 두려움을 조장해서 행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존재로 보는지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중차대한 목적일지라도 먼저 국가 자신이 법적 자격을 취득해야 하고, 비상상황일수록 헌법 원칙의 준수가 필요하다. 이 원칙이야말로 인류가 전쟁·재난·역병과 같은 수많은 ‘비상상황’을 거치면서 확립한 궁극의 보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선옥 작가·이선옥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