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새로운 수업과 평가, 입시를 넘어라

고교·대학 입시 앞에서 자유학기제는 ‘공부의 적’으로 여기는 학부모도 많아

인천에서 근무하는 초등교사 정은희씨(가명)는 특색 있는 미술수업을 하려다 좌절을 겪었다. 최신 미술의 트렌드를 반영하면서 학생들의 흥미를 끌 다양한 자료를 모아 별도로 교재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려 했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왜 교과서에 없는 것을 하느냐.” 학부모들은 교과서에서 벗어난 것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안해했다고 정 교사는 전했다. 초등학교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이 없음에도 그랬다. 정 교사는 “다시는 새로운 수업방식을 추구하지 않고,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나오는 대로 하겠다”고 전했다.

학부모 윤미성씨(가명)도 할 말이 있다. 윤씨는 “평가방법으로 수행평가보다 지필고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객관성’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입시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목고,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마이스터고 등의 정원은 5%. 언론에 흔히 ‘서울 주요 대학’이라고 나오는 상위 20여개 대학의 정원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수능성적을 잘 내기 위한 공부에 몰두해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 입시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안다. “취지는 좋지만 재밌는 데만 익숙해져 교과서를 등한시하는 버릇이 생기면 안 좋잖아요.” 요즘은 입학사정관제 등 학생부의 교과·비교과 영역을 활용한 대입전형이 늘었다. 그러면 수행평가도 괜찮지 않을까. 윤씨의 답은 “아니오”였다. 오히려 대입으로 하나 하나 반영되니까 더 민감하다. 수행평가라도 기준이 확실한 지필고사 형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은행과 기업이 밀집한 서울의 한 빌딩으로 진로체험 학습을 나온 학생들. / 한국교육개발원 제공

자유학기제를 통해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능력이 길러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자녀들이 공부 습관을 들이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주부들이 애용하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자유학기제, 아이들이 공부하나요?”라고 묻는 글이 올라왔다. 학원에서 내주는 영어와 수학 외에는 도통 하는 것이 없으며,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서 영화를 보는 등 놀러다니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도 놀았는데 중학생 때도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한 학기 정도는 풀어지도록 내버려둬요.” “다 풀려서 대학도 끝.”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이용자는 없었다. “결국 발표 잘하고 성격 활발한 아이들은 좋은 점수를 받겠지만, 우리 애처럼 성격이 소극적이고 말 없이 제 할 일 하는 아이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요”라는 의견도 있었다.

“자유학기제, 아이들이 공부하나요?”
교사에 대한 불신, 나아가 자유학기제에 대한 불신과 반발은 결국 입시문제로 귀결된다. 고교입시와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에게 자유학기제는 ‘잠시 스쳐가는 경험’을 넘어 ‘중학생 초기 공부습관 들이기의 적’으로까지 인식된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교사·학생 집단의 높은 만족도와 함께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정부 차원에서 제도 자체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대로 교육계에서는 자유학기제를 ‘진로체험’ 교육에 머물지 않고 교육혁신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운 수업과 평가를 할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은림 경희대 교육개발원 교수는 “자유학기제의 핵심은 ‘시험으로부터의 자유’”라며 “수많은 교육혁신들이 입시라는 장벽에 부딪히고, 학생들을 비교하기 위한 객관적인 점수 산출에 속박돼 거듭 실패를 해 왔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자유학기제를 통해 평가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낼 기회인 것이다. 문제는 학부모들을 설득해내는 과정이다.

교육부는 모든 학생들이 자유학기제를 경험하는 2016년 중학교 1학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18학년도 고교입시안을 개선하면서 ‘학생부 비교과 전형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입시를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지필고사 위주가 아닌 ‘꿈’과 ‘끼’, 즉 소질과 잠재력 위주로 선발하도록 고쳐 교육개혁까지 이끌어내겠다는 발상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6월 24일 4차 토론회 끝에 “학생부 전형 확대는 오히려 비교과 영역마저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낳는다”며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 김은정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선임연구원은 “자유학기제 학기 성적 역시 고입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됐었는데, 그것 역시 반대했다. 입시와 연계되면 더 이상 자유는 자유가 아니게 된다”고 말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자유학기제를 통해 고교입시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율형 사립고, 자립형 사립고 등 새로 생겨난 형태의 학교를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현재처럼 복잡한 입시제도를 단순화하고, 특히 석차백분율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은정 연구원은 “석차백분율의 경우 특목고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데, 한 학교에 1~2명 진학한다. 전교 1등을 위해 모든 학생을 줄세우는 구조”라며 “‘선 지원-후 추첨’ 제도를 강화하고, 석차백분율을 반영하는 입시만큼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전교 등수를 없애자는 것이다. 현재의 고교입시는 전기, 후기 등으로 나뉘어 복잡하게 진행된다. 이를 단순하게 통일하고, 일반고의 경우 자유학기제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적용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주장이다.

고교입시 개선 외에도 필요한 과제가 있다. 현재 중학교 과정에서 도입된 자유학기제를 통해 ‘새로운 평가방식’의 혁신을 이뤄내고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어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6년 교사 10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수행평가를 실시할 때 가장 큰 어려움으로 ‘공정한 기준 수립’이 1위(30.3%)를 차지했다. 업무시간 소요(26.5%), 학생·학부모의 민원(18.6%)이 뒤따르는 주된 이유였다. 김은정 연구원은 “‘친절한 성적표’ 등을 경험한 학부모들은 이에 대한 반응이 좋다”며 ‘경험을 통해 바꿔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고교입시 개선과 학부모 신뢰 얻어야
지난 5월 24일 열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자유학기제 관련 2차 토론회에서는 교사, 교수, 교육청 관계자 등이 나와 바람직한 평가방식과 아이디어 등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서 현 자유학기제의 진로체험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비판하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도교육청 김성천 장학사는 6월 16일 열린 4차 토론회에서 “진로체험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과 끼를 찾으라는 것인데, 이 요구는 과잉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꿈과 직업이 곧 동일하지 않고, 직업을 결정하는 일에는 우연적 요소도 작용한다. 꿈에 대한 과잉 요구는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장학사는 “진로체험은 ‘노동의 일상성’을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 이웃들이 무슨 일을 하고 살아가는지 체험하고 연대의식을 갖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김은정 연구원은 “자유학기제 초기 시행과정에서 학부모들의 반발이 클 때 진로체험은 자신의 아이 미래와 새로운 제도가 바로 연결되는 듯한 지점을 줘서 나름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며 “본질은 수업과 평가방법 개선이며, 이 측면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