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종북’몰이는 자업자득?

보수세력의 무기가 된 ‘종북 틀짓기’. 그 기원에 관해 진보진영의 생각은 원죄론부터 범죄론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6월, 최홍재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당시 남북청년행동 대표)은 국제외교안보포럼에서 ‘종북세력의 실체와 그 대응책’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최 행정관은 종북이라는 단어가 보수진영 내에서 쓰인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며 사회당, 진보신당 출신 인사들을 거론했다. 진보 내에서 종북몰이를 먼저 시작했다는 취지다.

진보진영 안에도 비슷한 인식이 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9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상황 당시 당내 자주파(NL)를 ‘종북파’로 지칭한 조승수 전 의원을 “종북 프레임을 만든 운동사적 범죄자”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 교수는 “종북 프레임은 공안의 논리가 진보공동체 내부의 프레임으로 이입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8년 2월 1일, 조승수 전 의원이 국회 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 탈당과 진보신당 창당계획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NL 종북파 지칭은 운동사적 범죄”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당시 조승수 전 의원은 자주파들을 종북세력이라고 비판한 뒤 가장 먼저 탈당했다. 그는 정부와 보수세력이 주도하는 지금의 종북몰이에 대해 “퇴행적인 보수세력에 의해 이데올로기화하고 물신화된 개념인 종북이라는 말이 상당히 불편하다”고 전했다.

5년 전 조 전 의원은 진보정치세력이 후퇴한 원인 중 하나로 민주노동당이 ‘친북당’이란 이미지를 가졌다는 점을 거론한 바 있다. 이런 이미지를 깨기 위해 그는 당내 다수파였던 자주파들과 ‘솔직한 논쟁’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당시 종북 논란은 진보 내에서 상대적 약자였던 평등파(PD)들의 항변이었던 셈이다.

조 전 의원은 보수세력의 종북몰이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현재 통합진보당에 모여 있는 자주파들도 반성적인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정권을 옹호하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남한의 진보정당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존재한다”며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과정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대응에 대해 “법리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적어도 통합진보당은 이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는 분단 극복과 조국 통일을 중요한 과제로 실천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북한과 주체사상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이 보시기에 불편한 모습에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성찰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활동하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은 보수공안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며 지속적으로 진보진영에 타격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석호 민주노총 연대사업국장(전 진보신당 사무총장) 역시 종북논쟁을 주도하며 진보신당 창당 깃발을 든 인물 중 하나다. 2007년 대선 직전 그는 평등파 내부문건에서 자주파를 ‘종북파’로 규정하며 진보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대선 직후 이 문건이 자주파 성향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를 통해 외부로 공개되면서 민주노동당 내 ‘종북논쟁’의 시발점이 됐다.

한 국장은 “‘종북’이 빨갱이를 대체하는 말로 쓰이는 상황에 대해 복잡하고 혼란스런 마음이 있다”며 당시 자신의 표현이 지나쳤다고 말했다. 조승수 전 의원 등을 ‘운동사적 범죄자’로 규정한 조희연 교수의 비판에 대해서도 “수긍한다”고 답했다.

물론 한 국장이 평등파에서 자주파로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진보신당의 후신인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당시 종북논란에 대해 그는 “자주파가 민노당 안에서 부정선거 등 패권적 행태를 계속해 와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주사파라는 말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해 대신 ‘종북’을 쓴 것인데 거꾸로 지금은 종북이 야권의 발목을 잡는 용어로 등장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현재 한 국장은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대책위의 공동상황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 종북이란 말은 정부와 여당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런 식이라면 나도 그들 입장에선 종북세력이다”라며 “오히려 통합진보당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앞장서서 종북몰이에 대응해야 그들(통합진보당)에게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에 앞서 2001년 사회당이 종북이란 표현을 먼저 사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2001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통합 논의가 있었을 때 사회당이 “종북세력과 당을 함께할 수 없다”며 통합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원칙 없는 진보 대통합의 부메랑”
2001년 당시 당 대변인이었던 신석준 전 사회당 대표는 자신들이 ‘종북 용어’의 원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2001년 우리가 반자본주의-반조선로동당 노선을 발표하며 민주노동당에 ‘조선로동당 추종세력’이라고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직접 ‘종북’이란 표현을 쓴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자신들의 말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종북’이란 단어가 생겨난 것이라는 뜻이다.

신 전 대표는 ‘종북’이란 단어가 진보 내부에서 제기됐던 이유와 맥락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 당시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이 방북해 논란이 된 행동을 했던 점이나,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에 비판적인 입장이 없었던 것 등을 들어 ‘조선로동당 추종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세력이 진보 내의 북한 편향을 해소하자는 본래 취지를 무시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 종북 딱지를 붙이면서 ‘진보가 종북 용어의 원조다’라고 몰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사회당 출신 인사들의 생각이다.

2002년 사회당 대선후보로 나선 바 있는 김영규 전국좌파연대회의 의장(인하대 명예교수)은 “국정원이나 정부·여당이 하는 종북몰이는 대선 부정선거에 대한 물타기 작전”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청구, 이석기 내란음모 등의 상황을 “신공안정국”이라고 규정하며 “(자주파가 아닌) 좌파 단체들이 모여 박근혜 사퇴를 외쳐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11월에 비상시국회의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홍세화 ‘말과활’ 발행인은 종북몰이가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보수세력이나 자주파만 비판할 것은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자주파의 북한 지향성에 대해 입을 닫아왔던 진보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홍재 행정관이 ’종북 용어’의 원조라며 거론한 인사 중에는 홍 발행인도 있다.

홍 발행인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지금의 수구세력의 종북몰이는 지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행해진 민주진보진영의 원칙 없는 대통합의 부메랑”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탄생과정과 야권연대 과정에서 “주사파의 종북 편향”을 알면서도 덮고 넘어간 대가로 종북몰이 대상에 한데 묶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세력뿐만 아니라 진보언론에서도 무원칙한 통합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작년 총선 전 한겨레, 경향 등 진보언론에서도 진보대통합의 상징인 양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트리오의 사진을 여러 차례 실었다.

이른바 통진당 사태 전에는 대통합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기사가 없었다. 한겨레와 경향은 자기반성을 하지 않아도 되나? 나는 이 점도 놀랍다.”

홍 발행인은 “수구세력의 종북몰이를 핑계로 모두 다 (자기반성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수구세력에 종북몰이의 빌미를 주었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희연 교수의 말대로 운동사적 범죄자일까. 한석호 국장처럼 이런 평가를 받아들이는 이도 있지만 반박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종북’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어 지금의 종북몰이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한 진보 인사의 말처럼 “종북이라는 단어가 없어도 간첩, 주사파, 용공 등 공안 드라이브를 거는 데 쓰일 용어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