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담대구’ ‘라쿤광주’가 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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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특성 빗댄 별명 인터넷에 나돌아… ‘심시티서울’ ‘갱스오브부산’ 등도

‘고담대구’를 아시나요?

‘디시인사이드’ 를 비롯한 사이버공간에서 떠도는 ‘고담대구’ 이미지.

‘디시인사이드’ 를 비롯한 사이버공간에서 떠도는 ‘고담대구’ 이미지.

네티즌 사이에서 지역과 관련한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고담대구’ ‘라쿤광주’ ‘심시티서울’ ‘마계인천’ 등이다. 만화나 게임, 영화의 이미지와 지역 이름을 합성한 이들 인터넷 신조어 대부분은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고담’은 1939년 처음 발간된 만화 ‘배트맨’ 속의 가상 도시로 뉴욕이 기본 모델이다. 축복받은 도시이지만 타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범죄가 들끓는 어둠의 도시로 변질됐다.

대구라는 지역명에 고담이 붙어 고담대구로 불리는 것은 대구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을 빗댄 것이라는 게 네티즌들의 설명. 특히 1995년 4월 8일 대구 지하철 상인동 가스폭발사고(101명 사망, 201명 부상),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방화참사사건(192명 사망, 151명 부상)이 고담대구 이미지의 밑바탕이 됐다.

이 같은 신조어가 처음 떠돈 곳은 2005년 무렵 ‘디시인사이드(http://www.dcinsi de.com/)’ 사건사고 갤러리다. 이후 대구에서 어떤 사건·사고만 터지면 ‘역시 고담대구’라는 반응이 돌기 시작했다. 마침 “대구는 요구르트 독극물, 총기 강도, 염산테러, 지하철 폭발 및 방화 등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곳”이라며 “앞으로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치안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당시 강희락 대구경찰청장의 취임 일성이 대구 매일신문에 보도되면서 네티즌들의 이 같은 신조어 놀이에 한층 불을 지폈다. 네티즌들은 지난해 대구지역에서 발생한 끔찍하거나 황당한 사건 10여 가지를 모아 ‘올해의 엽기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사고 잦은 대구, 5·18 광주서 착안

경상도와 전라도의 해묵은 지역감정의 발로인지 ‘고담대구’ 못지않게 네티즌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것이 ‘라쿤광주’다. 라쿤은 생물학적 오염으로 시민들이 모두 좀비가 된 ‘레지던트 이블’게임 속 도시다. 게임은 국가에서 정예 특수부대를 투입해 무력진압을 시도하다가 최후에는 도시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내용이다. 네티즌들의 설명에 따르면 광주에 라쿤을 붙인 이유는 5·18민주화운동 등 광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라쿤시티의 흐름과 접목시킨 것이다. 일부 네티즌은 고담대구와 견주어 ‘라쿤광주 2006년 베스트 사건사고 10’을 선정해 올렸고 이를 본 네티즌들은 ‘고담 VS 라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재미있어 했다.

서울을 ‘심시티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뉴타운 등으로 서울의 재개발을 잇따라 주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심시티(Simcity)는 미국의 맥시스(Maxis)가 1989년 개발한 도시건설 시뮬레이션 게임. 사용자가 시장이 되어 기본 자금을 가지고 황무지에 도시를 건설해가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2000년 5월에는 서울타워와 63빌딩 등 한국을 배경으로 한 심시티3000코리아가 출시됐다.

한 네티즌이 만든 ‘이명박의 심시티 2004’

한 네티즌이 만든 ‘이명박의 심시티 2004’

“불쾌하다” vs “재미있다”

하지만 심시티서울 역시 이명박 전 시장의 재개발 사업을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시각으로 비꼬는 것이다. ‘blue-sky15’라는 필명의 네티즌은 ‘청계고가를 홀랑 헐어버렸습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 폐쇄됐습니다, 지하철 요금과 버스 요금을 왕창 올렸습니다, 버스전용차로를 시뻘건색으로 바꿨습니다’ 등을 이 전 시장의 사진과 함께 게재하며 ‘이명박의 심시티 2004’라고 명명했다.

이외에도 ‘마계인천’ ‘뉴올리언스수원’ ‘착취춘천’ ‘소돔강릉’ ‘여의봉마산’ ‘살인의화성’ ‘조루태백’ ‘잭팟아리랑’ ‘제3세계안산국’ 등 다른 지역에도 저마다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네티즌 사이에서 부는 이 같은 지역브랜드 명명 열풍에 대해 “불쾌하”는 반응과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또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2007년 대선을 염두에 둔 음모’설까지 나돌고 있다. 특히 ‘고담대구’의 경우 대구에 연고가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음해하기 위해 조작된 용어라는 해석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야동순재’ ‘식신준하’와 같이 연예인의 이름에 극중 캐릭터를 접목한 별명을 붙이는 게 유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네티즌들이 지역에 그 지역 특성을 살린 별명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며 “네티즌들은 이런 말장난에 불과한 신조어 유통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대중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도시나 지역에 대한 역설적 진리가 숨어 있는 신조어”라며 “참신하고 통쾌하다”고 말했다. 김종휘씨는 “지자체마다 ‘혁신도시’니 뭐니 해서 장밋빛 미래를 장담하고 있지만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는 현재 그 도시나 지역의 현실을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명쾌하게 규명하고 있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변희재씨는 “유행하는 지역 관련 신조어를 보면 대부분 대중문화와 사건·사고 등 시사적인 내용이 접목돼 있다”며 “이는 요즘 젊은이들이 영화나 드라마, 게임과 뉴스 보도를 분리하지 않고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색다른 해석을 했다. 미디어 보도의 경우 대중문화와 달리 진실을 찾는 데서 오는 쾌락을 대중에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처럼 드라마틱하게 흥미 위주로 보도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사고체계에 혼란을 준 결과라는 것이다.

도시 별명,아하! 그런 뜻이~

다음은 ‘디시인사이드’에 한 네티즌이 올린 지역 별명 의미다.

서울 : 심시티서울 - 무분별한 개발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터무니없는 행동들 때문에 붙은 별명
부산 : 갱스오브부산 - 거대 조직폭력배가 많아 붙은 별명
광주 : 라쿤광주 - 과거 잦은 데모로 인해 붙은 별명
대구 : 고담대구 - 각종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오명이 붙은 도시.
인천 : 마계인천 - 엽기적인 범죄의 발생률이 높아서 붙은 별명
수원 : 뉴올리언스수원 - 방향 없는 성장과 도시의 빈민화로 인해 붙은 별명
춘천 : 착취춘천 - 혁신도시, 강원외고 등 도시에 상당한 이익이 되는 것만 다 빼앗겨서 붙은 별명
강릉 : 소돔강릉 - 비만 오면 집이 잠기고 길이 끊기는 일이 잦아서 붙은 별명
마산 : 여의봉마산 - 인구가 늘다가 줄어듦이 반복되어서 붙은 별명
합천 : 29만합천 - 일해(전두환의 호)공원 문제로 인해 붙은 별명
화성 : 살인의화성 -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올 정도로 연쇄살인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붙은 별명
태백 : 조루태백 - 폐광 수에 비례하여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어서 붙은 별명
정선 : 잭팟아리랑 - 대형 카지노가 생기면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서 붙은 별명
안산 : 제3세계안산국 - 외국인 노동자 수가 많은 데다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서 붙은 별명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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