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꼭꼭 숨겨라” 은닉재산 보일라

그룹해체 전 빼돌린 의혹… 수천억 원 추징금은 “돈 없다” 버텨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은닉 재산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온누리교회와 그 계열사(위성방송 CGNTV, 두란노사원)와 신동아학원의 전주대학교. 온누리교회 하용조 담임목사와 최 전 회장은 동서지간이다. <김석구 기자>

“전재산은 예금 29만 원.”
지난해 말 기준 추징금 집행률이 24%에 불과한 전두환 전 대통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사면복권돼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IMF 외환위기 이후 퇴출 총수들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경제 사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총수로 있던 시절 학교와 교회에 기부금 형태로 재산을 축적해놓는가 하면, 구조조정을 앞두고 불법적으로 그룹 재산을 빼돌린 혐의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우중·최순영 추징금 자진납부 0원
특히 이들은 수십조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추징금에 대해 ‘배째라’ 식으로 납부를 미루고 있어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추징금은 범죄 행위 또는 그러한 행위의 보수로 얻은 물건의 대가 따위를 사법당국이 몰수할 수 없을 경우 대신 징수하는 금전. 그 대표적 인물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각각 1672억 원과 342억 원을 지금껏 내지 않고 있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추징금 납부액은 아예 ‘0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검찰이 현재 중요 추징금 미납자로 관리 중인 거물급 인사는 13명 정도다. 이중에서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 특히 중요 추징 대상자로 분류된다. 그만큼 추징금액이 크면서도 추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빈털터리’ 최 전 회장의 활동 밑천은 교회와 학교다. 이는 ‘옷로비’ 사건으로 유명한 부인 이형자씨를 연결고리로 하고 있다. 위부터 이형자씨와 온누리교회 하영조 목사.

우선 김우중 전 회장의 추징금은 무려 17조9253억 원에 달한다. 이는 법원이 김 전 회장이 영국의 대우그룹 비밀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관리한 자금이 200억 달러(당시 환율로 25조 원) 규모로 파악하면서 나온 금액이다. 자세한 내역을 보면 해외 유령회사에서 물건을 수입한 뒤 수입대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조성한 26억 달러, 해외 현지법인들의 자동차 판매대금을 국내를 거치지 않고 BFC로 직접 송금한 14억1000만 달러, 해외법인 명의로 현지 금융기관에서 빌린 157억 달러 등이다. 이중 해외공장 인수와 운용에 투입한 자금, 해외차입금, 이자를 제외한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왔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할 당시 전 재산(당시 주식 1조2553억 원과 임야 452억 원 상당)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탓에 공식적으로는 국내에 재산이 없다. 유일한 재산이던 방배동 자택과 숨진 큰아들이 묻힌 안산농장도 경매에 넘어갔으며 부인 정희자씨 소유의 서울힐튼호텔도 오래 전에 처분됐다. 이어 대우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신문의 김 전 회장 명의 주식을 압수했다. 하지만 이는 추징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 규모이며, 은닉했을 재산에 대한 적발은 전무한 상태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추징금액이 1574억 원에 이르지만 추징금 자진 납부 실적은 전무하다. 법원은 ▲위장무역을 통한 무역대금 취득 및 수입대금의 해외송금(사기죄·재산국외도피죄) ▲신동아그룹 11개 계열사에 대한 부실대출(배임죄) ▲가공대출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이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횡령죄) ▲책임준비금을 축소하여 이익잉여금이 발생한 것처럼 결산보고서를 분식회계한 행위(보험업법 위반) ▲역외펀드인 그랜드 밀레니엄 펀드에 위장투자한 행위(횡령죄) ▲대한생명·신동아건설의 기부(배임죄)를 모두 유죄 판결해 이 같은 액수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더욱이 최 전 회장은 신동아그룹 계열사 신아원의 김종은 전 회장과 함께 1964억 원의 추징금을 추가로 공동 납부해야 하는 실정이다. 김씨는 최 전 회장이 1996년 국내 4개 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8000만 달러 가운데 1억6000만 달러를 미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1964억 원에 대해서는 현재 400만 원만 추징된 상태다. 검찰은 최 전 회장이 MVP창업투자에 투자한 7억1500만 원어치의 주식을 추징한 바 있으며, 2003년에는 예금보험공사가 최 전 회장이 홍콩의 한 은행에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예치해놓은 미화 266만 달러(당시 약 30억 원)를 환수한 바 있다.

한보 정태수 부자 비밀계좌 적발
최원석 전 회장과 정태수 전 회장의 은닉재산도 적발했다. 2002년 예보는 최 회장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으며 부인, 누나 등 특수관계인이 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법인으로 자신 명의의 대전문화방송 주식 165억 원 상당을 무상증여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정태수 전 회장 부자도 스위스의 비밀계좌로 빼돌렸다가 예보에 적발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가족의 재산. 왼쪽부터 경주힐튼호텔, 아도니스컨트리클럽, 아트선재센터. <경향신문사>

추징금 집행률이 이처럼 미약한 것은 그룹이 무너지기 전부터 비자금 확보 등 재산 은닉을 치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놓고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어 관계당국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재산 상황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김우중 전 회장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떠돌며 재기를 시도해온 것을 보더라도 ‘빈털터리’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교계에서 일정 정도 지분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보이는 최순영 전 회장의 행보도 ‘밑천’이 없으면 어렵다는 게 종교계의 전언이다. 때문에 이들과 연관된 ‘합법적인’ 재산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김 전 회장 가족의 재산은 대부분 아내 정희자씨에게 몰려 있다. 경기 포천의 아도니스컨트리클럽(골프장)과 경남 양산의 A-ONE컨트리클럽, 경주 보문단지 내에 위치한 경주힐튼호텔과 아트선재센터(미술관)가 정씨 소유다. 여기에 두 아들 명의의 서울 방배동 토지, 딸 명의의 이수화학 주식 등이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 재산들은 김 전 회장이 명의만 가족 앞으로 해둔 재산이 아니라 적법하게 증여한 것으로 법원에서 결론났고, 다른 의혹 재산에 대해서도 대리인이 예보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은닉 재산으로 명백하게 법적 결론이 난 재산은 없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이 재산들이 1000억 원이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김 전 회장이 전 대우맨들과 모임을 갖고, 베트남 하노이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등에 참가하는 ‘쌈짓돈’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 대우 핵심 직원에 따르면 현재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 소규모 제조업체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영 전 회장 역시 한 푼 없는 빈털터리라고 강조하지만 그의 부인 이형자씨를 통한 재산 내역을 보면 상황은 다르다. 이형자씨는 1999년 최 전 회장을 구명하기 위해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에게 고급 옷을 선물한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 결국 김 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회·학교에 회삿돈 거액 기부
최 전 회장의 활동 기반은 온누리교회다. 온누리교회는 소망교회, 사랑의 교회, 충현교회, 광림교회 등과 함께 국내 5대 엘리트교회로 손꼽히는 곳으로, 교회 내에 크리스천 CEO포럼, 대학교수 모임, 기업인 모임, 의료인 모임 등이 존재할 정도로 교세가 크다. 2008년 말 등록 교인이 6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요일에만 일곱 번 예배가 열리는 서빙고동 본당뿐 아니라 서울 양재, 경기 부천·수원·남양주·평택, 인천, 대전에 지부를 두고 18개에 달하는 해외 교회도 열었다. 2004년 이라크에서 피살된 김선일씨도 이 교회의 신도였다.

연결고리는 바로 이 교회의 하용조 담임목사. 최 전 회장과 하 목사는 동서지간으로 최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와 하 목사의 부인 이형기씨가 자매지간이다. 1980년대 초반 당시 요양차 영국에 머물고 있던 하 목사는 ‘횃불재단’을 만든 최 전 회장의 부름을 받고 국내에 들어와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타운 건립과 함께 온누리교회 서빙고 성전 건립을 지원받았다. 이후 온누리교회는 신동아그룹의 후원에 힘입어 전국 주요 요지에 지부를 건설하고, 서울 양재동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도 세웠다. 또 기독교위성방송인 CGNTV와 출판업을 하는 두란노서원, 월간지 <빛과 소금>을 발행했다.

바로 이 밑천이 신동아그룹 재산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대한생명의 대표이사와 횃불재단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던 최 전 회장은 1993~1998년 대한생명 이사회의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14억 원을 횃불재단에 무단으로 기부했다. 이는 상법 제398조(이사의 자기거래금지)에 위반된다.

결국 대한생명이 횃불재단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횃불재단은 대한생명에 총 479억 원(원금 214억 원 및 지연이자 265억 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현재 원금 214억 원은 회수된 상태며, 지연이자는 133억 원으로 하고 3년간 분할 상환 중이다. 이에 대해 최 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그 돈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개념으로 기부한 돈”이라고 밝혔다. 회삿돈과 자신의 돈을 구별하지 못한 구멍가게식 발상으로 그룹의 이윤을 개인 십일조로 사용한 것을 인정한 셈이다.

최 전 회장은 학교재단에도 기부금을 통해 터전을 만들었다. 1980년대 초반 신동아학원을 세운 후 1984년 전주대학교를 인수한 최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던 1992년부터 1999년까지 대한생명 이사회의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31억 원을 신동아학원에 무단으로 기부했다. 이 역시 현재 반환소송에 들어가 “신동아학원은 대한생명에 총 520억 원(원금 231억 원 및 지연이자 289억 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돈은 전혀 회수되지 않고 있다. 전주대학교는 학교법인은 강제집행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 ‘배째라’로 나오는 상태다. 이 역시 본인의 재산으로 내는 것이 마땅한 십일조를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의 자산을 자의적으로 처분한 어이없는 행태였다.

지난해엔 부인 이형자씨가 ‘한국판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수십억 원대의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남편은 세금조차 낼 수 없는 처지인데, 부인 이씨는 부동산 재력가인 셈. 문제는 이씨가 소유한 한남동 빌라를 매입했던 자금의 출처가 어디냐 하는 것이다. 교회 사업에만 헌신했을 뿐 돈을 버는 등 사업을 한 적이 없는 이형자씨의 사정을 봐선 이 역시 은닉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게다가 돈이 없어 추징금조차 못 내겠다고 버티던 최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15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중앙일간지에 광고문을 게재해 주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2005년 당시 그는 “검찰이 자신이 고소한 사기사건을 일부러 지연수사하고 있다”며 수사를 촉구하는 광고를 실었다.

관계당국 끈질기게 추징 집행해야

최근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도피 중 횡령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도피한 정 전 회장이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머물며 금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설립한 강릉 영동대학의 교비를 횡령해 도피생활 자금으로 쓴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정 전 회장은 며느리인 영동대학 학장을 통해 이 대학 출신 간호사 4명을 카자흐스탄으로 불러 간병을 받으면서 이들이 학교 교직원인 것처럼 꾸며 임금 4200만 원을 교비로 지급토록 했고, 카자흐스탄에 해외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지사를 설립하게 한 후 운영비 명목으로 1억3500만 원의 교비를 횡령해 생활비로 쓴 혐의도 받고 있다.

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은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들이 저지른 중대 범죄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는지도 논란이지만, 그것이 쉽게 사면되는 행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주를 이룬다. 특히 불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백억 또는 수천억 원이 훌쩍 넘는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이들에겐 더욱 날카로운 국민의 시선이 모아진다.

게다가 퇴출 총수들은 체납액도 엄청나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내내 부동의 고액체납자 ‘빅3’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2225억 원),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1073억 원), 정태수 전 회장의 아들인 정보근 전 한보그룹 사장(645억 원)이다.

지난해에는 국세청이 기존 거액 체납자 명단은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순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사법당국의 엄정한 사면권 행사와 치밀하고 끈질긴 추징 집행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말 민변에 따르면 2004년부터 현재까지 대기업 총수와 관련된 범죄 사안 17건을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 선고율은 88.3%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룹 총수들에 대한 추징금은 ‘적발과 징수’보다는 ‘알아서 내는’ 분위기라는 지적이 많다. 하태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추징 활동에 상당히 소극적인 법무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검찰의 손이 모자란다면 전문기관의 힘을 빌려서라도 추징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15억 달러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던 미국 엔론의 최고경영자 제프리 스킬링은 24년4개월형을 받았다. 종신형이나 마찬가지다. “비슷한 혐의를 저지른 사람들을 우리의 경우 너무 쉽게 사면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이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