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치 미스터리 BBK 시즌2 예고?

징역 8년·벌금 100억 김경준 누나 돌연 방한 뒷말 무성

"나도 뉴스 보고 알았어요. 그 사람(에리카 김)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현재 징역 8년형을 받고 수감 중인 김경준씨 장인 이두호씨의 말이다. 어쨌든 기자의 연락이 부담스런 눈치다. 김씨의 장모는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론사로부터 연락 안 받았으면 좋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것은 민주당 측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당시 ‘BBK 주가조작 의혹사건 진실규명 대책단’을 이끌었던 한 인사는 2월 28일 기자에게 “우리 쪽에서 자기들을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지 않고 들어왔다. 그렇다면 왜 들어왔는지 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경준씨 부인 이보라씨가 2007년 11월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후보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다는 이면계약서 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나중에 재판에서 김경준씨는 이 이면계약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 경향DB

에리카 김의 돌연귀국 및 검찰 조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난 2007년 대선 최대의 쟁점이었던 BBK 사건에 그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에리카 김이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김경준과 이명박 당시 후보가 한때 동업을 한 데는 두 사람이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이명박 후보는 에리카 김과의 ‘관계’와 관련,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에리카 김은 당시 재미교포 사회에서 성공한 한인 2세로 알려져 있었다”며 “김경준과 동업을 하게 된 것은 당시 ‘자녀의 한국 진출을 도와달라’는 에리카 김 부모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실소유주 MB” 다시 주장
에리카 김은 미국에서 BBK와 관련, ‘폭로’ 기자회견을 연다는 예고를 했다 돌연 취소했다. 에리카 김과 김경준 쪽은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당시 후보라고 주장했다.

2007년 12월 5일 검찰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선 며칠 전 “내가 BBK를 창업했다”는 이명박 후보의 강연 중 발언이 담긴 이른바 ‘광운대 동영상’이 새로운 증거로 공개됐다.

2008년 1월 15일부터 시작한 특검은 정해진 30일보다 10일을 연장해 2월 23일에야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명박 후보가 이미 당선인 신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권력이 새파랗게 살아있는 가운데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며 특검 결과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당시 김경준의 변호를 맡았던 박찬종 변호사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도 특검 결과가 나온 뒤 ‘특검을 특검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지금도 특검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BBK와 관련, 검찰 및 특검의 조사 결과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 BBK와 관련, 그동안 입을 다물던 사람들이 서서히 입을 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BBK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핵심인사들에게 권력은 아직도 새파랗게 살아있는 실세였다. 대부분 입을 다물거나 비보도 전제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009년 5월 김경준에게 내려진 형은 징역 8년에 벌금 100억원으로 확정되었다. 2007년 11월, 그의 처 이보라씨가 미국에서 공개한 이른바 ‘이면계약서’는 김씨 측이 조작한 것이라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김씨가 받은 8년 형에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1년과 위조사문서 행사 6개월 등 1년 6개월 형이 포함되어 있다.

김씨는 1심이 진행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은 실제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자금흐름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등의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심에 접어들자 그는 태도를 바꿨다. 김씨 주변에서는 다음과 같은 풀이가 나왔다. “미국에 있는 누나 에리카 김씨, 이보라씨, 김씨 부모 등을 강제송환해 수사를 하겠다고 하니 김씨가 포기한 것이다. 즉 자신에게 걸려 있는 혐의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자서전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기념식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에리카 김과 이명박 현 대통령. | 경향DB

2심부터 김씨의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는 자신에게 걸려 있는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사문서 위조와 관련, 그는 “범행을 깊이 반성하며 이 대통령과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진술했다.

김씨 주변이나 정치권에서 김씨에 대해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BBK 대책단에 간여했던 정치권의 한 인사는 “BBK가 김경준 주도의 사기사건인 것은 틀림없다”며 “우리가 당시 주목했던 것은 이 사기사건에 이명박 당시 후보가 어디까지 개입되어 있었는가였다”고 말했다. 이 후보와 관련된 인사들이나 기업이 투자를 했고, 둘이 결별하는 과정에서도 이 후보와 관련 있는 인사나 기업들의 돈은 일부 돌려줬는데, 그 과정에 이 후보가 얼마만큼 개입이 되어 있었는지, 즉 이 후보가 사기사건의 공모자였는지 여부가 핵심이었다는 것이 이 인사의 주장이다.

“사전협의 기획입국”의혹 법원 일축
김씨가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하면서 결론은 명확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재미교포 언론인 안치용씨는 지난 1월, 김경준씨가 ‘알려지지 않은 경로로’ 미국 법원에 제출한 육필 진술서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다. 진술서에서 김씨는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처음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한 뒤 1년도 넘은 2010년 11월에 작성된 그 진술서에서 김씨는 여전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리카 김의 귀국.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에리카 김은 검찰 조사에서 “BBK 조작사건은 김경준이 단독으로 벌인 사건이며, 이명박 대통령이 실소유주라고 주장한 것은 거짓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모종의 거래’에 바탕한 기획입국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앞의 정치권 인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김경준이 받은 형량이 8년에 100억원 벌금 추징인데, 이번에 에리카 김이 제안한 것은 ‘그동안 김경준이 산 3년을 노역형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8년은 미국 가서 하겠다’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

즉 에리카 김은 한국 법무부와 협상을 했고, 조건 수용을 대가로 한국에 와서 ‘입맞추기’를 한다는 것이 이 인사의 주장이다. 이것은 사실일까. 김씨 주변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2심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런 주장을 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형과 벌금형의 순서를 바꿔 집행해 달라’는 김씨의 요청을 한국 검찰은 이미 지난해 거절했다.

법원 대변인실은 사전협상을 통한 기획입국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검찰은 에리카 김 수사와 관련, “3월 중순까지 수사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주변인사는 “에리카 김이 아무런 장치도 만들지 않고 그냥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검찰과 말 맞추기를 하다가도 결국 핀트가 어긋난다 싶으면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에리카 김의 변호는 김경준의 2심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로고스의 김용 변호사가 맡고 있다. 3월 3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변호사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말씀 드릴 게 없다. 미안하다”고만 입장을 밝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