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자와히리. 미국 FBI에서 2천5백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현상금을 걸고 쫓고 있는 테러리스트다. 이 현상금은 오사마 빈 라덴의 목에 걸린 액수와 똑같다. 수배중인 주요 테러리스트를 소개한 FBI의 홈페이지 'Most Wanted Terrorists' 코너에도 알 자와히리의 모습은 맨 윗줄 오사마 빈 라덴의 사진과 나란히 놓여 있을 정도다.
FBI에서는 알 자와히리를 이집트 테러조직 '알 지하드'의 창시자인 동시에 알 카에다의 실질적인 2인자로 분류하고 있다. 1998년 8월 7일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폭파사건에 핵심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지금도 '아부 무하마드' '아부 압달라' 등 10여 개의 가명을 쓰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지난 10월 1일 아랍계방송 알 자지라 TV를 통해 앞으로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알 카에다 3인자, 1995년에 한국행
이에 앞선 8월 24일에는 이라크 무장 저항조직 '검은 깃발'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겠다는 협박 비디오를 공개하기도 했다. KBS 9시뉴스를 통해 공개된 약 1분 가량의 이 비디오에는 "한국 정부에 경고한다. 우리는 한국군이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파병을 중단하라. 이라크에 오는 군인이나 민간인은 모두 점령군이다.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분석에 따르면 검은 깃발은 주로 이라크 북부에서 활동하는 '안사르 알 순나'라는 테러조직의 또다른 이름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 카에다와 동맹관계거나 최소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어 한국인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더 이상 테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도 지난 5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내 정보기관과 해외 테러전문회사의 정보를 인용해 "테러조직 알 카에다 등이 1994년 이후 최근까지 13차례 이상 한국에 대한 테러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동남아 교민과 여행객도 대상
최 의원측에서는 특히 1995년 알 카에다의 3인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일명 KSM)가 테러의 '사전답사' 형식으로 마닐라발 서울행 비행기편에 탑승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KSM은 미국 9-11 테러의 제안자이자 1993년에는 자신의 조카 람지 요세프와 함께 뉴욕 세계 무역센터 지하에 폭탄테러를 감행했던 극히 위험한 인물이다.
1995년 당시 KSM이 정식으로 한국에 입국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김포공항에 체류했던 10시간은 노선파악이나 국내 항공보안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 최 의원의 설명이다.
한국을 겨냥한 테러 위협이 증가하면서 당국은 과연 이들이 타깃으로 삼을 곳은 어디인지에 대한 분석에 분주하다.
일단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테러 공격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라크 북부 쿠르드-이란 국경지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일신과 성전' '검은 깃발' 등의 테러조직들은 박격포나 RPG-7 대전차 로켓 발사기, SA-7 지대공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어 자이툰 부대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함께 자이툰 부대 지원인력이나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및 동포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 카에다와 연결된 '아브사에프 그룹'과 '제마 이슬라미아' 등의 테러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 동남아지역에서 한국 교민과 여행객에 대한 테러도 예상되고 있다.
경비 허술한 시설이 공격 목표
무엇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 테러리스트들이 의도하는 공포감이나 파병철회 여론 조성 등 정치적-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국 법무성이 확보한 알 카에다의 '테러매뉴얼'을 보면 이들이 어떤 목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알 카에다 테러의 지침과 의무를 소개한 이 파일은 1998년 알 자와히리와 함께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에 대한 폭탄 테러를 감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알 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 '아나스 알리비'의 영국 맨체스터 은신처에서 발견한 것이다.
모두 9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 매뉴얼을 살펴보면 알 카에다는 '적국 인물과 관광객 저격' '치명적 타킷은 아니지만 위락시설, 부도덕한 곳, 죄악의 장소를 폭파 및 파괴' '대사관이나 치명적인 경제 센터를 공격' 등을 주요 임무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9-11 테러 당시 표적이 됐던 세계 무역센터는 바로 알 카에다의 테러매뉴얼에서 정한 타킷의 전형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나이트클럽 등 위락시설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수많은 금융회사가 밀집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나 여의도 63빌딩 등이 목표가 될 수 있다.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최진태 소장도 "정부 당국에서는 국내에서의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공항이나 항만, 미 대사관 등 외교시설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있지만 장갑차와 대테러 특공대가 경비하는 이런 장소에 폭탄을 들고 뛰어들 테러리스트는 그다지 많지 않다"면서 "그보다 테러리스트들의 타격은 민간인이 많이 출입하고 보안이 취약한 '연성목표(Soft Target)'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알 자와히리의 '협박'이 공개된 다음날인 10월 3일, 일요일인데도 외교통상부의 시계는 바쁘게 돌아갔다. 외통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테러 대상에 우리나라가 명시적으로 거명된 것을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취할 수 있는 조취는 모두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알 카에다 등 국제적 테러조직의 테러공격 위협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테러업무 총괄 콘트롤타워 시급"
인터뷰-한국테러리즘연구소 최진태 소장
1999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 테러연구소인 한국테러리즘연구소에서는 "정치적 선전효과와 광범위한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공격을 사전에 암시하는 것이 최근 테러의 특징"이라면서 "지금의 연쇄적인 테러 협박은 자이툰 부대가 본격활동을 개시하는 시점에 실제 테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최진태 소장과의 일문일답.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로 목적을 달성한 사례는.
"1979년 '반미'를 내세운 이란 내 호메이니 추종자들이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 있었다. 협상 도중 미국의 강경진압 의도가 발각되자 테러리스트들은 인질을 이란 수도 전역에 2~3명씩 분산해 두었다. 결국 미국은 당시 에드문스키 부통령이 '다시는 이란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인질을 구해냈다. 훗날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데 이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과거 뮌헨올림픽 사건의 경우에도 비록 인질과 테러리스트 모두가 사살됐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결국 아라파트가 자치정부수반이 됐기 때문에 성공적인 테러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스페인 열차테러사건도 스페인의 이라크 철군을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우리의 테러대응시스템에 문제는 없나.
"문제 많다. 현재의 대테러시스템은 1982년 대통령훈령 제47호에 의거한 '국가대테러 활동지침'에 기반한다. 대통령훈령이니까 엄밀히 따지면 행정명령일 뿐 법률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일단 법률적 근거를 갖는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현재 각 부처에 분산된 대테러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국가테러대책위원회'와 실무를 담당하는 '대테러센터'를 갖춰야 한다."
정보수집 능력은 어떻게 보나.
"대테러의 핵심은 예방, 예방을 위한 선행조건은 정보 수집이다. 수많은 첩보를 분석해 유의미한 정보로 재생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테러리즘에 정통한 대테러전문가가 없다. 국정원에도 테러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국가정보대학원이나 국방대학원 등에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국내 테러 위험지역을 꼽는다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각국에서 발생한 테러의 통계를 보면 65%가 민간다중이용시설에 집중됐다. 우리나라도 테러대책이 전무하다시피 한 삼성동 무역센터나 63빌딩, 백화점이나 롯데월드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 특공대와 육군 대테러특공대가 경비하고 있는 공항이나 미 대사관에 뛰어들 테러리스트는 많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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