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첫 번째 곡이 들려오는 순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며, 두 번째 곡 ‘Are You Going With Me’가 시작되면 함께 떠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실험 의식이 돋보이는 앨범 ‘As Falls Wichita, So Falls Wichita Falls’도 추천한다.

미국 중부 대평원의 미주리주에는 가본 적 없지만, 그보다 아래인 이른바 딥 사우스(Deep South) 지역은 다녀온 일이 있다.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와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를 갔다 왔는데, 기억나는 것은 오직 끝도 없는 대평원이었다. 애틀랜타에서 몽고메리로 가는 도로는 그야말로 넓고 깊은 평원의 연속이었고,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저물녘 드넓은 평원에 드리워지는 광막한 일몰 풍경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끝없는 평원을 달리면서 나는 딥 사우스는 아니지만 조지아주와 인접한 미주리주를 떠올렸었다. 팻 매스니와 찰리 헤이든의 걸작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yline’ 때문이었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 리스 서밋 출신의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와 역시 대평원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아이오와주 세난도 출신의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이 빚어낸 깊고 따스한 이 듀오 앨범은, 우선 앨범의 안팎을 가득 채우는 미주리주의 벌겋게 물든 황혼 사진이 인상적이거니와 물론 당연히 그 안에 수록된 순도 100%의 가슴 먹먹한 연주곡들이 내 몸 속 어딘가에 꾹꾹 저장돼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지아주와 앨러배마주의 하늘을 보면서, 미주리주의 하늘을 생각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샅샅히 살펴보니 방금 언급한 지명들의 평원과 하늘은 하나의 하늘인 듯 서로 장엄하게 닮았다.

2010년 4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오케스트레온 프로젝트와의 공연에서 팻 매스니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 flickr steevithak

‘피카소 기타’ 개발해 마치 하프 연주하듯
이 광막한 대지의 한편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독창적인 저술가이자 영국 더럼대 총장까지 역임한 빌 브라이슨은, 그러니까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발칙한 여행기’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이 대평원의 마을들에서 자란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독과 외로움에 친숙해져야 하는 것이고, 필사적으로 이 드넓은 태생의 유배지를 어떻게든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한 적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추모와 유형지에 흡사한 고향에 대한 뼛속 깊은 그리움을 포복절도의 유머로 기록한 ‘발칙한 미국 횡단기’에서 빌 브라이슨은 중부 대평원 일대가 얼마나 광막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곳인가를 다음과 같이 쓴다.

“내가 어릴 땐 가로가 10m, 세로가 5m가량 되는 광고판들이 도로변 들판에 높이 걸려 있었다. 아이오와주나 캔자스주 같은 곳에서는 가도 가도 허허벌판이라 이런 광고판들이 유일한 자극이었다(중략). 이곳 외로운 중부에서 광고판들은 사실 공공서비스나 마찬가지다. 1㎞ 전방에 표지판이 서 있는 게 보이면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가 궁금해지고, 광고판이 가까워 오고 지나치는 동안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그밖에는 별로 볼 것도 없는 미주리주의 소도시 리스 서밋에서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가 1954년 8월 12일에 태어났다. 일찌감치 재즈 기타에 두각을 나타낸 팻 매스니는 게리 버튼이나 찰리 헤이든 같은 점묘파 재즈맨들을 만나면서 무대 위의 삶, 현 위의 인생을 살게 된다. 무엇보다 들국화 초창기에 전인권 옆에 허성욱이 있었던 것처럼 팻 매스니에게는 그 어떤 범주에도 넣기 어려운 주술 같은 키보드 연주자 라일 메이즈가 있었다. 두 사람에 따르면 미국 재즈는 오넷 콜맨의 전통 위에서 세련되고 영롱한 별빛을 내기 시작한 팻 매스니 그룹의 시대가 됐다.

1977년의 앨범 ‘Watercolors’, 1978년의 앨범 ‘Pat Methney Group’, 1980년의 앨범 ‘80/81’, 1982년의 앨범 ‘Offramp’ 등의 초기 걸작들은 향후 30여년에 걸친 자신들의 음악적 여정의 이정표가 된다.

팻 매스니와 그의 친구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막연히 ‘퓨전’이라는 이름의 도회적인 비빔밥이라기보다는 비밥과 프리의 전통 위에서 새 길을 모색해 나가는 아방가르드에 가깝다. 심지어 이들을 ‘뉴에이지 재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마도 1985년의 앨범 ‘Song X’를 필두로 해 2010년 그의 음악을 하염없이 동경해온 팬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든 ‘오케스트리온 프로젝트’를 듣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규칙을 파괴한 오넷 콜맨이 신경질적으로 참여한 ‘Song X’의 파열음이나 21세기 최첨단 자동 기술 연주 로봇이 베이스, 드럼, 오르간, 비브라폰, 퍼커션 등을 연주하는 가운데 그의 기묘한 기타 솔로가 펼쳐지는 ‘오케스트리온 프로젝트’의 불협화음은 실험의 극한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 팻 매스니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데뷔 때부터 어쿠스틱보다는 신시사이저 기타를 더 선호했던 그는 ‘오케스트리온 프로젝트’에서는 3개의 목과 42줄이 달린 이상한 형태의 일명 ‘피카소 기타’를 개발해 마치 하프를 연주하듯 했는데, 이는 “전설적인 재즈 음악인은 모두 그 시대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했던 선구자들이었다. 나 역시 새로운 실험을 늘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던 평소의 음악적 소신의 결과다.

장엄한 황혼의 미주리주 대평원 출신
그러나 역시 그의 음악에, 그의 실험의 여정에, 그의 기나긴 현 위의 인생에 하염없이 흐르는 정조는 ‘고향 없는 세대의 노스탤지어’다. 장엄한 황혼의 미주리주 대평원 지대 출신인 팻 매스니는 지구상의 주요 대도시에 기립한 호텔을 집으로 삼아 떠돌며 살아왔는데, 그럴수록 당연히 고향에 대한, 그리운 것에 대한, 그 모든 것의 상실에 대한 감정을 깊이 녹이고 삭힌 길 위의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1987년 발표곡 ‘Last Train Go Home’, 1989년의 야심작 ‘Letter From Home’,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와 함께한 1992년 곡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 순회공연 실황을 담은 1993년 앨범 ‘The Road To You’ 등은 당장 그 제목만 봐도 그의 음악이 길 위의 음악, 떠도는 음악, 상실과 외로움의 음악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맨 앞에 말한 찰리 헤이든과 함께 한 1997년의 걸작 듀오 앨범 ‘Beyond The Missouri Skyline’은 팻 매스니의 노스탤지어가 마른 눈물자국이 돼 황량한 들판에 번지는 앨범이다. 이 곡들을 듣다 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어진다.

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주에 어떤 매체에서 ‘휴가 떠날 때 들을 만한 음악’을 추천해 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마침 운전 중이라서 뭐라고 답변을 하지 못했다. 차를 세우고 약속장소에 물끄러미 앉아 있으면서 어떤 음악을 얘기할까 생각했으나 어쩐 일인지 더 이상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팻 매스니의 길 위의 음악들을 생각했었다.

특히 1981년 팻 매스니와 라일 메이스의 감수성이 최고조로 달했던 때의 앨범 ‘Offramp’를 추천한다. 첫 번째 곡이 들려오는 순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며, 두 번째 곡 ‘Are You Going With Me’가 시작되면 함께 떠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실험의식이 돋보이는 앨범 ‘As Falls Wichita, So Falls Wichita Falls’도 추천한다. 이 곡을 듣다 보면 깊은 밤 국도변에 차를 세워놓고는 어두컴컴한 들판을 하염없이 보고 있게 될 것이다. 이 두 곡을 동시에 듣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라이브 연주 가운데 백미를 모은 1982년 앨범 ‘Travels’를 선택하면 된다.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가 “나의 감정적인 모든 면을 강하게 자극했고, 음악을 통해 가능한 것들에 대한 내 모든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려 놓았다”고 한 바로 그 앨범이다.

Travels! 앨범 제목부터 일단 떠나자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이 라이브 앨범의 첫 곡 또한 ‘Are You Going With Me’다. 진짜 주의해야 한다. 우선 전방 안전부터 확인하자. 이 곡이 시작되자마자, 당신은 곧장 액셀러레이터를 밟게 된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