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ㆍ회사로 간 ‘복직자’ 단 한명도 없어… 지난 2년간 13명이나 세상 떠나

2월 28일.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한 쌍용차 노조 조합원 임모씨(43)의 노제가 평택시 쌍용자동차 회사 앞에서 열렸다. 12번째 죽음이었다. 임씨는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였다. 임씨의 아내는 남편의 해고 후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작년 4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임씨 또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우울증 치료까지 받는 아이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복직만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해 살던 임씨는 사망 전날 저녁식사를 함께 한 동료에게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앞에서 쓰러진 피켓을 고쳐 세우고 있다. |김문석 기자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쌍용차 직원들은 구조조정 당시 회사에 남은 자를 ‘산 자’, 구조조정 대상자를 ‘죽은 자’라고 불렀다. 노조는 회사의 구조조정에 맞서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고 8·6 노사합의로 파업은 종결됐다. ‘죽은 자’들 중 일부는 ‘무급휴직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8·6 노사합의서에는 ‘무급휴직자에 대해서는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2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회사로 돌아간 무급휴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총 8만1747대를 판매해 2조70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회생계획 목표인 6만8562대를 19% 초과 달성했다. 흑자전환이었다.

“인간관계서 소외되는 게 너무 힘들다”
임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압박감은 비단 임씨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정도는 다르더라도 임씨가 느꼈던 고통은 다른 무급휴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3월의 첫날, 쌍용차 무급휴직자 대표 이성호씨(49)를 만나러 평택을 찾았다. 이씨는 현재 평택 항만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 달에 보름 정도만 일거리가 있어 밤에는 주로 대리운전을 한다. 이씨는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했다. 경제적인 문제로 대학생인 큰아들은 계획보다 일찍 군대를 보냈고, 중학생인 작은아이가 좋아하는 피자 한 판도 선뜻 사주기가 어렵다.

기약없는 기다림도 고통이다. 약속한 1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회사에서는 복직계획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씨는 “21년 다닌 회산데, 그 동안의 삶이나 인간관계에서 소외된다는 게 너무 힘들다”며 “회사에 속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무급휴직은 노사합의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라며 “48%라는 낮은 비율에 불만을 갖긴 했지만 1년 후 복귀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협상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년 후 복귀 조건이 없었으면 당시 파업을 안 풀었을 수도 있었다”며 사측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복직을 기다리다 지친 무급휴직자들은 평택을 떠나기도 한다. 막노동을 하며 복직을 기다리던 한 무급휴직자 가족은 친지의 소개로 청주에 새 일자리를 구했다. 생활고와 기다림에 지친 무급휴직자 몇몇이 그렇게 평택을 떠났다. 평택에서의 기억이 상처가 된 이들은 ‘평택을 떠나니 속이 후련하다’는 말을 남기며 이제는 쌍용차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접촉은 피하려고 한다.

평택에서 무급휴직자 취재를 하던 도중, 쌍용차 창원공장으로부터 또 하나의 비보를 전해들었다. 임씨의 노제가 치러진 지 만 하루가 지나지도 않아 쌍용차 창원공장 전 직원이었던 조모씨가 자살한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번엔 희망퇴직자였다. 13번째 죽음이었고, 8번째 자살이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창원으로 내려가고 있는 길”이라며 “자살이지만 사회적인 죽음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희망퇴직자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지금 시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희망퇴직자들의 경제적 고통과 심리적 압박감을 지적했다. “보통 퇴직금이 2000만원 정도인데 이 돈이 종잣돈 구실을 하기에는 너무 적고, 또 재취업도 잘 안되다보니 곶감 빼먹듯이 쓰다보면 이때쯤이 퇴직금이 바닥날 시점”이라는 것. 지난 12월, 1월에 자살한 황모씨와 서모씨도 희망퇴직자였다.

늦은 밤 창원의 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지역구 의원을 비롯, 몇몇 국회의원이 다녀갔고 익숙한 이름이 적힌 몇 개의 조화가 놓여 있었다. 창원공장 노조지회장 유세종씨(40)에 따르면 고인의 부인은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노조든 왜 이제서야 찾아오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모든 걸 거부한 상태라고 했다. 유씨는 “이렇게 돼서야 찾아오는 것도 모순이고 핑계죠”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창원공장 전 직원 조모씨의 자살 비보
유씨는 “조합원들이 술 한 잔하고 전화해 ‘죽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며 “그때는 바쁜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쌍용차 퇴직자나 휴직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지원책이 전혀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취업알선이나 생계안정대책이 없다보니 경제적인 문제가 불거지고, 이것이 곧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유씨는 “부부간 이혼 얘기가 쉽게 나오는 상황이 됐다”며 “창원에서만 2쌍의 부부가 이혼했고, 회사를 떠났거나 연락이 안되는 사람까지 하면 더 될 것”이라고 말했다.

13명의 죽음이 방증하듯 지난 2년여간 쌍용차 노동자들의 삶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유세종 지회장은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간 희망퇴직자의 취업알선이나 생계안정에 대해 노동부에 요청을 해도 “이야기해보겠다”, “알아봐주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복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쌍용차 인수자로 인도 마힌드라가 선정되고 지난 1월 회생계획안이 통과됨에 따라 쌍용차 인수·합병 절차는 마무리됐다. 유씨는 이 과정에서 정부가 무급휴직자나 비정규직 복직 문제 등 이행되지 않고 있는 노사합의의 약속들이 이행될 수 있도록 정리해주었어야 하는데 그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정부가 오히려 회사나 기업노조를 좌지우지해 노조나 조합원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다”며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제기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유씨는 내일 발표할 기자회견문을 고쳐야겠다며 장례식장을 떠났다. 평택공장 임씨의 죽음과 관련한 기자회견문을 3월 2일 발표하기로 했는데 이제 거기에 조씨의 죽음까지 보태 써야 한다며 씁쓸해했다. 3월 2일 아침 6시 30분. 창원공장 앞에서는 또 다시 ‘죽은 자’들의 출근투쟁이 시작됐다. 유세종 지회장과 문기주 전 정비지회장(52) 등은 회사 정문 앞에서 고인을 기리는 근조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도 있었고 목례를 하는 옛 동료도 있었다. “이제껏 회사에 ‘함께 살자’고 외쳐왔는데 이제는 ‘다같이 죽자’고 말하겠다.” 유씨는 확성기를 들고 공장을 향해 소리쳤지만 공장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한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쌍용차 공장 앞에는 망자를 기리는 한스러운 상여소리만 허공을 맴돌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