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이용 실태… 주식류·식재료·생필품 많이 찾아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아담한 가게.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66㎡ 남짓한 공간에 설치된 진열대에 식품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쌀, 참기름, 치약 같은 생필품부터 콜라나 커피 같은 기호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곳의 모든 제품이 무료라는 사실이다.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정보지만, 이곳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공간은 아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만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문을 연 이 가게의 이름은 ‘금천 푸드마켓’이다.
한 달에 한 번으로 이용횟수 제한
2007년 12월 28일 현재 서울시에는 이런 푸드마켓이 15군데 설치되어 있다. ‘푸드마켓’은 기존 ‘푸드뱅크’의 단점을 보완하여 이용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애초 푸드뱅크의 탄생은 IMF 외환위기와 맞물려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부가 사회안전망의 일부로 푸드뱅크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국정 100대 과제의 일환으로 1998년 1월부터 서울·부산·대구·과천 4개 지역에서 푸드뱅크 시범사업을 시작해 같은 해 9월부터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푸드뱅크는 기탁자들로부터 식품을 기부받아 복지시설과 단체에 공급하면 해당 시설과 단체가 이를 다시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푸드마켓은 저소득층에 대한 식품 지원이라는 푸드뱅크의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이용자들의 욕구를 더 충실히 반영하는 형태다. 푸드뱅크는 기부받은 식품들을 복지시설과 단체에 일괄적으로 배분했다. 이러다 보니 실제 이용자가 원하는 식품과 푸드뱅크가 제공하는 식품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푸드마켓에서는 상설 매장을 마련하고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갖춤으로써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푸드마켓의 모든 물품은 기본적으로 무료지만 이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 우선 이용 횟수가 한 달에 한 번으로 제한된다. 한 번에 살 수 있는 물품의 양도 정해져 있다. 이 경우 ‘품목’이라는 단위가 적용된다. 가령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수급자가 몰려 있는 노원구의 노원 푸드마켓에서는 한 번에 최대 4품목까지 가져갈 수 있다. 1품목의 기준은 물품마다 조금씩 다르다. 노원 푸드마켓의 경우 쌀 한 봉지(2㎏)는 2품목으로 계산된다. 라면은 4개가 1품목으로 계산된다. 품목 계산은 각 구마다 조금씩 달라서 금천 푸드마켓은 2㎏짜리 쌀 한 봉지를 1품목으로, 라면은 5개를 한 품목으로 친다.
푸드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아무래도 쌀, 라면, 국수 등 주식이나 부식류다. 여기에 간장, 식용유, 참기름 같은 식재료들과 세제나 두루마리 휴지 같은 생필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 이용자들은 월초에 주로 몰린다. 노원 푸드마켓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박철씨는 “월초에는 100명씩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있고, 두루마리 휴지 같은 경우는 아침에 문을 연 지 30분 만에 동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끔은 다소 ‘엉뚱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박씨는 “한 번은 밍크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마켓에서 물건을 사간 적도 있고, 드럼세탁기용 세제를 찾는 분도 있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각 동에서 사회복지사 1명이 많은 수급자를 맡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며 실태 조사를 철저히 해 좀 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한정된 예산이 대상 확대 걸림돌
푸드뱅크와 푸드마켓 사업의 실무를 주관하는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가 12월 12일에 발간한 자료집에 따르면, 표본조사 대상자 346명 가운데 74%는 월소득 20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의 저소득층이고, 100만 원 이상인 경우는 0.6%인 2명에 불과했다. 원칙적으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모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푸드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서울시의 모든 수급자가 푸드마켓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켓을 이용하는 것이 강제적이지 않고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아직까지 푸드마켓이 있는 구는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15개 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해 2008년 1월 중으로 은평구와 성동구에 푸드마켓을 열고 2008년 말까지 모든 자치구에 푸드마켓을 열 계획이다. 푸드마켓을 이용하고자 하는 수급자들은 의료급여증과 신분증을 갖고 해당 구의 푸드마켓을 방문하면 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현재 푸드마켓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의 수급자들은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서울광역푸드마켓을 이용해야 한다.
한정된 예산도 대상자 확대의 걸림돌이다. 지난 12월 21일 푸드마켓을 운영하기 시작한 금천구의 경우 전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7000여 명이지만, 금천 푸드마켓에 등록된 회원 수는 11%인 750여 명이다. 금천구 내 각 동사무소에서 한부모 가정이나 독거노인을 위주로 추천을 받아 대상자를 선정했다. 금천 푸드마켓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홍덕현씨는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대상자는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수급자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아쉬워했다.
현재 푸드마켓에 물품을 기탁하는 업체들은 주로 식품업체다. 그러나 식품 후원만으로는 푸드마켓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후원업체들이 기탁하는 물품들에 비해 이용자들이 원하는 물품들은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수요를 고려하여 자체적으로 물품을 구입해야 하는 푸드마켓 입장에서는 현금 후원의 필요성이 커진다. 사회복지협의회 정책개발팀 이인규 대리는 “후원자 수도 많고 후원금도 증가하고 있지만 이용자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후원이 크게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후원을 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푸드마켓 홈페이지(www.foodmarket.or. kr)를 방문하거나 전화(02-786-1377)로 신청할 수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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