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과거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전문성을 무시한 정실인사’라며 비판입장을 견지해왔고, 집권 초에도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의 인사와 관련 노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못 받고 있다. 참여정부의 공기업 임원이 어떤 인사들로 채워졌는지 ‘뉴스메이커’가 심층 검증했다.
행정혁신을 위해 우선 공정한 인사제도를 정착시키겠다. 정당인 출신의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전문성과 성실성을 위주로 내부발탁하는 인사를 하겠다.”
참여정부 정책 책임질 인사 선택
노무현 대통령이 1995년 6·29지방선거 부산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한 언론사와의 특별회견에서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는 인사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야당 시절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를 ‘전문성을 무시한 정실인사’라고 강력히 비판하면서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대여공세를 폈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 대통령은 집권초 공기업 임원 인사와 관련해 “개혁 성향과 전문 능력을 갖추 인사를 임용할 것이다” “가장 적절한 인사를 할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다” “공기업 등 산하단체에 대해서는 개방형의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등등 기회 있을 때마다 낙하산 인사 척결을 강조했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도 “외국 우수 인재를 ‘보쌈’해서라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 남발 않겠다” “참여정부는 낙하산 줄을 끊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의지는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설치하고 기관장추천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는 등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부산하기관 임원 공모제 매뉴얼도 개발했다. 낙하산 인사의 개선을 위한 제도화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공기업 임원인사에서 국정의지와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그 취지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공기업 기관장의 인사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공기업의 인사에서 ‘기능성’ 위주의 인사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정책적 이해도가 높은 인사 기용이 곧 공기업의 효율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책금융기관 노조 정부에 반기
노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노 대통령은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라고 하는데, 코드가 안 맞는 인사를 하면 잘 된다는 것이냐. 외부 인사가 아니면 폐쇄적 인사를 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면서 “참여정부의 중요한 인사 원칙은 참여정부 정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상임감사 임명과 관련한 증권거래가 중지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치달았던 증권선물거래소 파업사태를 두고 노 대통령의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은 증권선물거래소 상임인사에 관한 입장표명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집권후반기로 갈수록 ‘낙하산 인사’가 극성을 부린다. 특히 조만간 여러 산하기관 주요 보직 임기만료가 예정돼 있어 노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가 무슨 문제냐’는 식의 언급을 함으로써 자칫 ‘낙하산 인사’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12개 국책금융기관 노조는 지난 6월 8일 “낙하산 인사가 이뤄지면 연대해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노조도 현 정부와 가까운 386 공인회계사 김영환씨(42)의 상임감사 내정에 반발해 철야농성에 들어갔고 끝내 주주총회를 연기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치인 출신 63명 상임감사 임명
이런 시점에서 ‘뉴스메이커’가 노무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 전반을 검증했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자료를 확인하고 장관 정책보좌관 등 사실상 낙하산으로 공무원에 임용돼 활동하는 분야까지 포함시켰다.
그 결과 참여정부 출범 이후 7월 25일 현재 정부산하기관에 임용된 상근직 임원을 분석한 결과, 정치인 출신이 162명, 관료출신인 163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산하기관에 진출한 낙하산 부대 325명은 남성이 318명이다. 직책별로는 기관장인 121명으로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는 감사 88명, 이사 80명의 순이다. 전직은 관료가 151명으로 정치인 138명보다 약간 많다. 한편 정치인 출신은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에 가장 많은 30명이 임용됐으며 건설교통부 18명, 과학기술부 9명 노동부 농림부 환경부가 각각 8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기관장과 감사 모두 정치인 출신은 대한석탄공사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대한광업진흥공사 박양수 전 사장(2004년 9월 임명)은 열린우리당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위원장을 지낸 인사다. 이 공사의 양민호 감사는 청와대 민원비서관을 지냈다. 한국보훈복지 의료공단 김하경 이사장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39번 배정을 받았으나 낙선했다. 이충렬 감사 역시 노 대통령 후보 외교특보와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을 지낸 사람이다.
100개 기관장 중 내부승진은 8%뿐
김재일 대한건설협회 감사, 권형우 한국공항공사 감사, 여인철 한국과학기술원 감사, 노재철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사 감사, 박병용 한국농촌공사 감사 등 상임감사로 임용된 정치인 출신은 63명. 국회의원 출마자로서 공기업 사장으로 발탁된 인사로는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비례대표), 이정환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진철훈 전 제주국제자유도시 이사장, 윤덕홍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박재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등 56명이다. 국회의원 출신도 박정훈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 방용성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이성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최욱철 강원랜드 감사 등 적지않다. 청와대가 “과거 정부와 달리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강조했던 것을 무색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와 비교하면, 참여정부는 낙하산 투하식 기관장 임명자 수는 직전 정부보다는 훨씬 적다. 민간인 출신 전문 CEO가 더 많았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정부투자기관 13곳과 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에 적용되는 87곳 등 100개 기관 기관장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참여정부 들어 취임한 기관장 84명 가운데 민간인 출신은 36명이다. 이는 공무원 출신이 33명, 정치인 출신 8명, 8명보다 많은 숫자다. 내부승진은 8%인 7명에 그쳤다.
반면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임명된 공공기관 기관장 209명 가운데는 공무원 출신이 103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민간인 출신 전문CEO는 56명, 정치인 출신은 41명, 내부승진은 4%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공무원의 산하기관 ‘차출’이 단연 앞선다. 무려 61%인 118명나 차지했다. 민간인은 36명(19%), 정치인은 32명(17%)에 불과했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 두드러져
낙하산 양상을 보면 과거 공무원과 정치인 출신이 많이 진출한 반면, 참여정부에선 민간인의 진출이 늘어나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고 있다. 공공기관 기관장의 공채비율이 높아짐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민간인 중에서는 시민단체 인사가 많아 이 역시 친노 지지세력의 낙하산 이동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또한 기관내 ‘권력서열’ 2위이며 경영진을 견제하는 감사 자리에 친노그룹 인사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감사는 한마디로 책임이나 전문성은 별로 없지만 자리보전하며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편안한 자리로 통한다.
올해 5월 정부 관료출신인 A씨는 1년여 만에 정부산하기관의 감사직에서 물러나면서 한 발언이 관가에서 회자된 일이 있다. 그의 퇴임의 변은 “하는 일 없이 거액의 월급을 받기가 미안해서”였다. 물론 ‘위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라는 직원들의 눈총도 견디기 어려웠음을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게다가 감사는 연봉도 높은 편이다. 기획예산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05년 결산자료 기준으로 정부출자기관에서 한국도로공사, 한국농촌공사, 대한주택공사 등 5개 기관의 감사 연봉이 기관장보다 많았다. 한국도로공사 감사의 연봉은 1억 2500만 원으로 기관장 연봉(판공비와 업무추진비 제외) 8450만 원의 1.5배였다. 물론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정치인 출신이 감사를 맡고 있다.
장관정책보좌관제도 취지도 퇴색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낙하산 인사의 꽃은 감사”라며 “정부산하기관 상임감사의 학력과 주요 경력에 비추어 적격성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오히려 정치인 출신은 정치적 중립성, 관료 출신은 주무부처와 독립성 차원에서 잠재적인 하자를 지닌 것으로 우려된다”며 “영문학 전공하고 관련부야 경험이 전무한 인사가 건설기관의 감사로 임명되거나, 국어교육 전공자가 한국토지공사, 사학 전공자가 전기안정공사에, 항공공학 전공자가 한국조폐공사에, 제약학 전공자가 한국항공우주산업에 각각 감사로 임명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2001년 3월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있을 때 “대차대조표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공기업 감사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낙하산 인사가 공공부분 개혁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관장과 감사가 모두 정치인 출신이나 감사를 하는 부처 관료출신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사실상 기관에 대한 견제기능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차관시절인 지난해 11월 “공기업 방만 경영의 큰 원인중 하나는 주무부처가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주무부처 공무원과 공기업 임원이 인적 네트워크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낙하산 인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도입된 ‘장관정책보좌관제도’ 역시 낙하산 인사 통로로 전락하고 있다. 장관 업무의 효율성 제고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치권 인사의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본지 집계 결과 7월 28일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된 정책보좌관은 19개부처에 33명(천정배 전 장관 포함)에 이른다. 이들 33명 중 상당수가 국회의원 보좌관 혹은 비서관 등 정치권 출신이다. 그 결과 정책적 방향에 대한 전문가적 입장에서의 조언이라는 당초 취지보다는 대부분이 대국회 관련업무에 머물러 ‘정책보좌관’이 아닌 ‘국회 연락관’ 혹은 ‘정무비서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산하기관 임원 연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샐러리맨의 자존심은 보수다. 샐러리맨의 꽃인 CEO, 그 중에서도 정부산하기관을 비롯한 공기업 CEO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산업은행 총재(유지창 전 총재 1~11월, 김창록 현 총재 11~12월) 연봉은 성과급 3억31000만 원을 합쳐서 7억1100만 원으로 지난해 공공기관장 평균 연봉인 1억2200만 원의 5.5배 수준이다. 2004년 산업은행 순이익이 1조 원에서 지난해 2조4000억 원으로 늘어 수익구조가 개선된 데 따른 보상 차원의 인상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지난해 12말 현재 누적결손이 2조3000억 원에 이르는 등 경영상태가 매우 부실한 상황이며 이 때문에 향후 3~5년간 법인세 납부가 면제된 상태다.
2위 연봉자는 중소기업은행장(강권석)으로 5억7600만 원이고 다음 주택금융공사 사장(정홍식)은 4억2500만 원을 받았다.
이어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배영식, 김규복·3억9700만 원),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이영탁·3억6000만 원),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한이헌·3억5700만 원), 수출입은행장(신동규·3억4000만 원) 등 금융기관 기관장들이 4~8위를 차지했다. 비금융권으로는 가스공사사장(이수호·3억3600만 원)과 대한주택보증 사장(권오창·3억1900만 원)이 1, 2위를 차지했지만 전체적 연봉서열로는 간신히 10위권에 턱걸이한 수준이다.
그러나 경영능력평가와 공공기관 CEO의 연봉은 무관하다는 게 드러났다. 산업은행을 비롯해 법인세가 면제된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의 공공기관은 작년 한 해 동안 국민부담으로 세금환급금 1517억 원을 받았으나 이들 공기업 CEO의 연봉은 공공기업 기관장 최상위에 랭크되는 천문학적 액수이다.
지난해 정부투자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토지공사 사장의 연봉은 9903만 원이다. 이는 기관장 평균 연봉인 1억22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경영실적 평가에서 2위에 오른 한국전력 사장은 2억5333만 원, 4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2억2322만 원을 받았다. 또 경영실적 평가에서 3위, 혁신평가에서 최고우수기관으로 평가된 도로공사 사장의 연봉은 8450만 원이다. 이는 최하위로 평가된 기관의 기관장보다도 적다. 석탄공사 사장도 1억7567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만성 경영적자에 빠진 철도공사 사장의 연봉도 8450만 원으로 나타났다.
‘낙하산의 꽃’으로 불리는 감사의 연봉(업무추진비와 판공비 제외)은 오히려 기관장보다 높다. 기관장의 평균연봉은 2004년도 1억1700만 원, 2005년도 1억2200만 원이었으나 감사는 2004년 1억2300만 원, 2005년도 1억3100만 원으로 기관장보다 더 높다. 최고 고액연봉자 순위는 산업은행 감사가 4억8500만 원, 한국주택금융공사 감사가 4억2500만 원, 중소기업은행 감사가 4억200만 원으로 1, 2, 3위를 차지했다. |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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